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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omas Lee Mar 10. 2024

앙투아네트의 눈물

세상에는 불행이 겹쳐 고통을 겪다가 한스럽게 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참 많다. 그들의 인생을 조명하다보면 아주 중요한 순간에 몇 갈래의 선택지가 나타나고 어떤 길을 택하냐에 따라 운명이 바뀌게 되는데, 주인공은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불행을 예감하지 못한 채 그 길을 택하게 되어 결국 비극으로 점철된다는 것!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생은 한마디로 기구하다. 아니 신비할 정도로 기이하다. 더없이 행복할 것 같던 한 여인의 삶이 반전의 불행으로 무너지는 이야기이다.


태생적으로 최고의 혈통으로 태어났고, 결혼 후 예기치 않게 갑자기 왕비가 되므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왕비로서 행실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는 느닷없는 역사의 급류에 휘말리며 30대 젊은 나이에 교수형에 처해진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의 딸로 태어나 프랑스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여제인 마리아 테레지아였는데, 예로부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앙숙 관계였다. 그래서 결혼 후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략결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민들에게 ‘적국 출신의 왕비’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으며, 이것이 훗날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부터 당한 모진 시련과 고난의 씨앗이 되었다.


루이 15세가 갑자기 죽자 19세이던 앙투아네트는 왕비가 되었지만 태생적인 한계였을까 그녀가 매우 사치스럽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여기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은 다이아몬드 사기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그녀의 시아버지 루이 15세는 자신의 애첩 뒤바리 백작 부인에게 고가이면서 특별한 선물을 하기로 했다. 왕의 주문에 따라 보석상은 크고 작은 540개의 다이아몬드로 구성된 최고급 목걸이 제작에 들어갔다. 목걸이 제작 작업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1774년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인해 갑자기 사망해 버렸고, 그의 첩이었던 뒤바리 부인을 루이 16세가 성 밖으로 추방해 버리므로써 목걸이 계약은 파기되었다.


난처해진 보석상은 이것을 새로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팔려고 했지만, 그녀가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석상은 왕비와 친하다고 떠벌이던 라모트 백작 부인에게 중개를 의뢰했다.


중개 의뢰를 받은 라모트 백작 부인은 실은 왕비와 친하지 않은데 소문을 그리 퍼뜨린 것이다. 그녀는 내심 목걸이를 가로챌 계획을 세웠다. 명문가 출신으로 부유하고 출세욕이 강하지만 왕비와 관계가 원만치 못해 고민하던 로앙 추기경을 먹잇감으로 정했다. 궁정 사제장의 지위에 있었던 로앙 추기경은 스트라스부르 명가 출신의 성직자이면서 매우 방탕한 모습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추기경은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 왕비에게 잘 보여 재상으로 출세하려고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로앙 추기경을 멀리하고 있었으나 그는 왕국에 중용되기 위해 왕비의 호감을 사려했다. 왕비와의 친분을 과시하던 그녀에게 로앙 추기경이 왕비와 만나게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자 그녀는 사기극을 꾸민다. 그후 추기경은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작은 숲에서, 라모트 백작부인이 왕비라고 소개한 어떤 여자를 만나는데 사실 그녀는 왕비와 닮았다는 이유로 백작부인에게 고용된 여자였다.


그렇게 믿음을 산 라모트 백작부인은 그에게 많은 돈을 빌려 귀족사회로 진출했다. 이때 보석상은 보석을 매각하기 위해 그녀를 이용하려 했고 그녀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추기경에게 왕비가 목걸이를 국왕 몰래 사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하지만 프랑스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비밀스런 거래를 원한다면서, 왕비가 추기경에게 비밀중개상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로앙 추기경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여 목걸이를 구매한다. 그리고 목걸이를 가지고 라모트 백작부인 집으로 가서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비용 지불일이 되자 라모트 백작부인은 추기경의 수표로 비용의 일부를 지불했지만, 터무니없이 적자 보석상이 왕비를 만나 불평을 늘어놓게 되고 그녀는 협상 내용을 듣고 대노한다. 드디어 로앙 추기경이 국왕 부부 앞에 불려온다. 추궁당한 로앙 추기경은 가짜 왕비가 서명한 편지를 내놓는다. 그것을 읽은 루이 16세는 추기경이 자신을 기만했다고 분노한다. 로앙 추기경과 라모트 백작부인은 즉시 체포되어 바스티유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이 사건은 사실과는 달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음모에 의한 것으로 소문나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증오하는 여론이 강해졌다. 게다가 이 사건이 라모트 백작부인의 사기임이 밝혀져 무죄를 선고받은 로앙 추기경을 루이 16세가 파면하면서 국왕 부부의 명성은 급하게 추락하였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기상이변으로 농업 생산량이 급감하자 물가마저 폭등하여 서민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폭동, 시위, 약탈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에 평민대표들이 '국민의회'를 결성하여 정부에 대항하려하자 루이 16세는 군대를 동원하여 강제해산을 시도한다. 이 소식을 접한 파리 시민들은 국민의회를 보호하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서 무기를 탈취하고 무장을 하며 국왕의 조치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로써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혁명의 열기는 지방으로 확산되고 농민도 봉기하여 지방 귀족을 공격하기도 했다. 왕의 권위는 무너지고 정국은 혁명세력인 국민의회가 주도하였다. 이런 과정으로 프랑스혁명이 완성되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로 망명을 시도하여 몰래 파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곧 군인들에게 발각되어 파리로 끌려왔다. 이때 국왕 일가의 권위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프랑스 사태를 예의 주시하던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양국은 프랑스에 대항하는 동맹을 체결하여 혁명정부를 압박했다.


프로이센군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분노한 파리 시민들과 의용군은 왕궁인 튀틀리궁을 공격할 때 국왕일가가 의회로 피신하였으나 의회도 점령당해 결국 왕권을 중지시키고, 국왕 일가는 모두 유폐되었다.


드디어 혁명정부는 재판을 통해 루이 16세에게 사형 판결을 내려 참수형에 처했다. 몇 개월 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감옥으로 이감된 뒤, 공개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으며, 바로 다음날 단두대에서 참수당한다.


왕조를 붕괴시키기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혁명주도 세력은 조작한 수많은 악마성을 루이 16세와 앙투아네트에게 입혔다. 각종 스캔들을 만들어 그녀를 악마화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빵을 달라고 국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말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것은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밝혀졌다


당시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극도로 부정적이었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당대에 퍼져 있던 그녀에 대한 소문과 평판 대부분이 허위였다고 밝혀지고 있다. 왕정 시대 프랑스 왕비로서 특별히 부적합한 행실도 없었으며, 정치적 능력을 이유로 그녀를 폄훼하는 것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는 평이다.


역사의 강물은 정의롭다고 한다. 그러나 항상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승리자가 늘 역사의 주인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그녀와 같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면서 곁가지로 흐르기도 한다. 이것을 역사의 아이러니라 한다.

그녀는 최후의 순간에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믿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며 눈물을 뿌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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