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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omas Lee Mar 05. 2024

익어가는 삶

잠을 설치니 하루가 바람빠진 풍선처럼 맥없이 늘어진다. 노인 흉내 내기엔 너무 이르지 않냐는 안 사람의 푸념에 "맞다" 하면서도 그건 정말 어쩔 수가 없어. 내 맘대로 안되니! 잠들겠다고 용을 쓰며 눈을 감아도 꿈나라 문이 절대 열리질 않으니 그게 문제요. 내 괴로움을 모른 채 곤히 잠든 아내가 부럽기도 하군.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잖아. 헌데 그건 너무 과장같아. 백짓장은 맞들면 찢어지기 쉽잖소. 이건 농담이고...

근데 사실 어떤 일이든 혼자 한다는 건 힘들지. 어려운 일일수록 더 그래. 그럴 때 누군가 곁에서 힘을 보태준다면 얼마나 좋겠소. 요즘 묘목을 키우려고 비닐하우스를 지으려 하는데 이게 혼자 하려니까 너무 어렵겠어. 그래서 일꾼을 구하려는데 사람이 없네. 시골엔 일할 사람이 없어.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떠나고 시골엔 노인들만 남았어. 그분들이 구부정한 허리로 농사를 짓고 살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어. 머지않아 닥쳐올 내 신세라는 생각도 들고... 근데 어쩌겠어. 담담하게 받아들여야겠지.


어깨 위로 눈 소복히 쌓이는 겨울이 귀찮은지 잣나무가 눈 털어대는 소리로 여기저기 후드득거리네. 겨우내 함께 이 산을 지켜주던 철새는 이제 곧 떠날 채비를 하겠지? 그나저나 겨울이 점점 짧아지니 이 친구들이 올 겨울에도 나를 찾아줄지 의문이요.

'너희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게' 녀석들을 바라보며 무언의 약속을 날리지. 내 마음을 안다면, 이 산에서 나와 쌓아온 우정을 생각한다면 올 겨울에도 녀석들은 꼭 다시 돌아오겠지. 그렇게 믿으며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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