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였기에 쓰기 시작한 글이다. 하지만 깊은 고민을 한 결과이고 과제가 끝낸 후에도 몇번의 수정을 거쳤다.그리고 묵혀두기엔 아까웠다.
나는 얼마인가?
나는 얼마일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어느 정도의 효용성을 가졌고, 이런 나의 능력이 어디서 어떻게 쓰임에 따라서 내 가치가 정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준수한 신체, 화목한 가정, 남부럽지 않은 대학교, 또래보다 빠른 취업, 안정적인 직장, 꽤 자신 있는 문서 작성 실력 등,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일까?
사람을 구체적인 액수로 환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존엄성을 가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라는 존재가 아닌 나의 직업인 경찰관으로서 나는 얼마일까? 라는 방향으로 생각을 비틀어보았다.
1,400원 초록병
경찰관의 서비스와 활동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역시 직접적인 계산은 어렵다. 치안이라는 무형의 것을 유형의 화폐로 환산할 수는 없다. 단순히 월급과 경찰관 1인이 책임지는 시민의 수를 계산하면 답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경찰관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이다. 사람들은 직장과 가정 그리고 삶에 지치면 술을 찾는다. 또한, 축하받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술이 함께 한다. 그렇기에 경찰관으로서 나는 1,400원이다. 소주 한 병 가격이다.
같이 행복할 수는 없을까?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 시대가 되며 혼자 있는 시간이 증가하였다. 기술의 발전으로 누군가는 혜택을 보았지만, 누군가는 그 발전에서 뒤처졌다. 사람들은 점차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다. 이제 더는 나와 다른 의견이 있으면 합의하고 좋은 의견을 함께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의 의견만이 옳다고 상대방을 찍어누른다. 한 마디로 피곤한 사회가 되었다.
결국, 사회는 갈수록 빠르게 분화되고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는 다양해지고 있다. 나와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며 피로감을 주는 이슈들은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갈등이 발생했으며,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경찰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 존재한다.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는 개인의 평온이 전제이다. 하지만 복잡해진 사회 속에서 구조에 대항하고 갈등을 빚어내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오늘날 경찰의 수많은 임무 중 하나이다.
삶에 지친 사람들은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으로 본인만의 저항을 시작한다. 누군가는 그 분노가 단순한 주취 소란으로 발현되고, 누군가는 피켓을 들고 길거리로 나선다. 혹은 의견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일을 모의한다. 경찰관은 이러한 사람들을 제지하고 이들로부터 국민을 지킬 의무가 있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경찰관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다양한 법적 및 행정 절차가 있지만 결국에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경찰 업무의 시작이자 끝이다. 평소에 소심한 사람도 술이 들어가면 말을 많이 한다. 혼자만의 고민을 과묵하게 품던 사람도 술이 들어가면 청산유수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말문을 트이게 하고,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는 소주 한 병이 바로, 경찰관이다.
소주 한 병에 사람들은 곪아버린 애환을 푼다. 급진적인 사회 속에서 소외감에 사무친 사람들이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다시금 이어주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경찰의 모습이다.
하지만 술은 양날의 검이다. 친목 도모의 기능도 하지만, 갈등을 유발하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애주가도 있는, 반면 술을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찰 업무도 그렇다. 누군가는 경찰에 대해 선의를 보이지만 누군가는 악의적으로 대한다. 경찰관은 술이란 존재처럼 마냥 이쁨받을 수만은 없는 직업이다. 미움을 수용하고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 경찰관의 할 일이다.
경찰관이 아닌 나는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가치를 가졌는지 파악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경찰관으로서 나는 앞서 말한 이유로 인해 1,400원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