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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l 25. 2023

믿음이 기다리고 있다

사담 4

 신뢰는 믿음과 같은 말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믿지 않으며 신뢰하지도 않는다. 내게 관계의 시작은 언제나 손쉬운 일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호감을 살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져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라 자부해 왔다. 지금도 그 건방이 딱히 떨쳐지지 않는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은 나를 꽤나 좋아해 준다. 다만 그걸 유지하는 게 채 3주를 가지 않았다.


 쉽게 정을 주지 않고 기왕 준 정이라면 처절해질 때까진 회수하지 않는 나는 관계의 종말 앞에선 남의 탓을 하기 바빴다. 질투에도 여러 인격이 있다. 내 격이 낮아짐을 격앙된 목소리로 감추는 것만큼 추한 일이 없지만 기브 앤 테이크가 애매한 선에 걸쳐있는 사이에서 자주 샘을 낸 것도 부정하진 않겠다. 나는 쩨쩨한 비호감 인간이 되는 것에 더 수월한 사람이다.


 업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 몇몇과 가까워졌다. 그중 아직도 내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얼굴조차 보기 싫어진 사람도 있다. 상식과 몰상식이 시시각각 자리싸움을 하는 이곳에선 너도 어쩔 수 없겠지 싶다가도 작은 사례 몇 개에 눈물이 핑 돌기도 화가 샘솟기도 한다. 믿음이 기다리고 있다 맹신해 생긴 협업의 득과 실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런 기계적 믿음에는 배신이 당연하단 듯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철저히 이기적인 회상이다. 그들에겐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테고 내게는 마땅치 않았던 것뿐이다. 입을 최대한 닫고 쓸모없는 일만 반복적으로 하던 어느 날, 옆에서 내 표정을 읽고 있던 성숙한 어른들 덕에 겨우겨우 구조될 수 있었다. 나는 의외로 말수가 적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또 생각보다 참을성이 있고 고분고분한 나는 그제야 남이 내미는 손을 잡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업의 특성상 모든 일을 혼자 떠안고, 컨펌하고 책임까지 져야 하는 사람에게는 실패 원인을 운의 탓으로 돌려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게 일견 편리하기도 하다. 하지만 작은 믿음은 곳곳에서 날 거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그저 내가 누군가를 믿지 못했다는 걸 깨닫자 민망하기도 했다.


 일정한 점심식사 속의 방부제, 식품첨가물의 더부룩함을 견디기 어려워 반강제로 굶은 최근 몇 주가 있다. 몇몇 어른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11시 20분이 다가오면 우리는 어물쩍 다이어트를 핑계로 공원과 도심 속 골목을 쏘다녔다. 한 끼를 건너뛰고 조금 더 걸으면서 나누는 얘기가 오히려 더 건강한 식단 같았다. 여기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부패하는 마음이 잠시 멈췄다.


 내가 잘못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끝끝내 이해를 포기한 그들이 나쁜 사람인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엔트로피가 작용하지 않는 분야는 쉽사리 찾기 어렵고 영원이라는 것은 먼 길만큼 막연하다는 걸 학습적으로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 보다는 “그렇지 않을까?”라는 한 발 물러선 배움을 토로하자 가까운 어른은 내가 드디어 철들었다 말한다.


 좁은 나라에 태어나 어떻게든 야금야금 높이와 평수를 늘리는 것에 집착하는 ‘어른이’ 됐다. 집 은 숲, 바다, 강과 가까이 있을수록 그 가치가 오른다. 넘치는 의심과 모자란 공간을 여실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도 아파트처럼 서늘하고 서글프다. 갖는 동시에 갇히는 것. 어느 하나 확신할 수 없을 때 해가 빼꼼 든다. 이 좋은 날씨에 틀어박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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