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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an 22. 2024

그냥 그랬습니다.

진급에 실패했다.

나름 대기업 공채 출신이니까, 이미 내 동기들은 절반 넘게 퇴사했으니까.

내가 그리 뛰어난 사원은 아닌 거 같지만 대리 T.O. 에 내 자리 정도는 있지 않겠어?

불안함을 마냥 덮어두고 3년을 버텼다.


아마도 아무것도 모르던 첫 해 신입사원 평가에 C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하반기 끝자락 즈음 신사업 부문으로 발령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전 부문의 팀장과 부문장에게 대부분의 평가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동기 2명이 동일하게 C를 받았지만 항의로 인해 B-로 상향 조정을 해줬다는 이야기를 평가가 끝난 뒤에야 들었다. 나는 그걸 따지고 들만큼 회사가 차갑진 않겠지, 이번에도 마냥 짐작했다.


남은 두 해를 B-로 마무리했다. 그러니 총합 평가로 봤을 때 누군가 누락이 되어야 한다면 그건 객관적으로 내가 되는 게 맞을 것이다. 사원에서 대리 진급은 웬만하면 시켜준다더니. 나는 그 '웬만하면'에 속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가 됐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게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번에도 마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는 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어떤 분기점들이 있었다. 내가 첫 커리어의 시작을 아무도 희망하지 않았던 신사업 부문으로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그 안에서 또 다른 TFT에 속해 외롭고 처절한 회사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날 도와주는 분들의 손을 잡고 다시 새로운 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곳의 사업 성과가 망해가지 않았더라면. 난 진급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등 떠밀지 않았다. 그 모든 분기점에서 회사는 어쨌든 내게 선택권을 줬다.


나를 오랫동안 지켜주던 한 선배는 회사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날 보며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을 만큼 씁쓸하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그와 함께 수많은 밤을 지새우던 2년 차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멀리서 타 팀이지만 나를 제법 예뻐해 준 한 팀장님이 슬퍼하지 말라고 파이팅의 손짓을 건네며 지나갔다. 힘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피식 웃었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끝을 목도하자 드디어 진짜 직장인이 됐다.


사무실의 진득한 공기를 기억한다. 착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과 후다닥 사무실을 벗어나는 사람,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주는 사람.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이야. 천장이 노랗게 보였다. 안 그래도 나, 요즘 이 일에 확신이 사라지고 있었는데. 이거 진짜로 나가야 되는 시그널인가? 이른 퇴근을 해버렸다. 여자친구와 엽떡을 먹기로 했는데, 약속을 취소했다. 다른 누구보다 그 친구를 보면 내가 크게 무너질 거 같아서였다.


뒤늦게 따라붙은 술을 사주겠다는 전화들과 위로의 메시지에 최대한 응답을 했다. 그래야만 내가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슬프지 않기도 했다. 나름 8개월 정도 고민을 했던 일이니까. 이제 진짜 시작해 봐야겠어. 부모님께 퇴사를 해야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엄마, 아빠 둘 다 내 행복을 위해 안녕을 빌어주진 않았다. 바깥은 더 춥다. 다시 생각해 봐라. 난 이미 충분히 많은 생각을 했는데.


오랜만에 집에서 혼술을 했다. 땡겼다기보다는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뭔가 나를 구석으로, 더 바닥으로 몰고 가야만 확신이 생길 것만 같았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이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별로 친하진 않지만 나를 유심하게 봐준 하얀 얼굴의 선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찬우는 좋은 의미로 이 회사랑 안 어울리는 거 같아." 최근 들어 더 뚜렷하게 내가 홀로 덩그러니 남은 유학생 같다고 느꼈다.


얼마 전 연말정산을 진행하며 확인해 보니 내가 작년 한 해 이 회사에서 받은 돈이 대략 6천만 원 정도였다. 어딜 가도 이 만큼은 못 받겠지. 난 내 주제를 너무도 잘 안다. 보잘것없는 학점과 취업이라고는 불가능한 예술대 출신에 그 흔한 스펙 한 줄 조차 없는 내게 기회를 준 이 첫 회사를 그래서 너무나 사랑했다.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패기는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처럼 금방 타성에 젖는다. 나는 원래의 나로 서서히 돌아왔다.


내 못되고 못난 성격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랬어야 하는 직무였다는 변명은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한다. 난 타인의 기준에서 객관적으로 좋은 동료가 되진 못했다. 그러니 달게 받을 수 있다. 아니, 받아야만 한다. 나로 인해 기분과 성과가 나빴을 사람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MZ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다. 내가 받은 상처만큼만 남을 아프게 했다.


아주 친한 선배 하나가 지금 당장 퇴사하는 건 남들한테 쪽팔려서 그런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본인과 좀 더 얘기를 해보자고 했다. 이상하게도 나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내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미 마음이 돌아선 것을 차치하더라도 당장 내년의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태 선택권을 받아왔으니 이제는 진짜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할 시즌이다.


까무룩 잠에 들었다. 그 속에서 몸부림을 쳤다. 이거 후유증이 크다더니 벌써부터 작용하는 건가? 20분 정도 뒤에 찜찜하게 깼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쏟아졌다. 긴 낙담 이후 짧은 분노가 솟구쳤다. 너네 중에 나보다 진짜 고생한 사람이 있긴 해? 너네 중에 내 상황을 겪었을 때 나만큼 해냈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해? 머릿속으로 나보다 못해 보인 사람들의 수를 헤아렸다. 그럴 수 있다고? 씨발, 그게 왜 하필 나여야 하는데.  


체념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래, 난 어차피 이제 나가고자 했잖아. 오히려 좋은 기회야. 억지로 다독이다 보면 불쑥불쑥 괴로운 감정과 순간, 상황과 냄새들이 전두엽을 파고든다. 단순 반복의 일을 해봐도 유튜브를 봐도 다르지 않다. 역시 경험해보지 못한 상처는 더 크게 와닿는다. 도저히 월요일을 맞이할 자신이 없어서 목요일까지 휴가를 썼다. 금요일에는 퇴사 의사를 전달할 생각이다. 늦어도 2월 안에는 여기서 나를 지우고 싶다.


Nor For Sale. 물건을 파는 회사에서 어느 순간 나를 사치품처럼 여겨왔다. 나는 제 값을 치러야 움직이는 사람이야. 처량한 자만을 늘어놨다. 한 지구 안에, 하나의 나라 안에, 하나의 도시 안에, 하나의 기업 안에 작은 개인인 나를 갑작스럽게 느끼게 된다. 손 안에서 갈라지는 물줄기 같다. 나름 길게 준비해 왔지만 역시나 생경하다. 전부 다 0으로 돌리고 싶은 욕구만 든다. 다시 새로운, 새로운 미래로 돌아가자. 집을 나서야 한다. 


내일 나는 정동진으로 떠난다.

내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추천해 준 가게와 바다를 가 볼 생각이다.

다들 생각을 정리하고 돌아오라고 말하지만 난 이미 생각을 정리했다. 

오히려 확신과 다음을 생각할 요량으로 떠난다.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없는 사람도 있다.

둘 다 멋진 일이고 멋없는 일이다.

너무 두렵다. 하지만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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