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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n 19. 2024

Radio

그날은 왠지 모르게 메시지 한 줄 한 줄에 더 초조함과 화를 느꼈다.

노트북을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달랐을까.

사과하고 다시 보듬을 네 시간 뒤의 아웅다웅에 벌써 지쳤나.

무언가 달랐겠지만 그랬다고 언젠가 일어날 일이 뒤집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좀 더 격식을 갖춘 말투였으면, 하긴 했다.


검은 방 속에서 AM과 PM을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덩그러니 느꼈다.

난 침대 위에 커다랗게 웅크린 살찐 사슴 같았다.

슬퍼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나는 독립적인 게 아니라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다.

빌려주지 않으면 흘깃, 훔쳐보는 얄궂은 사람일 뿐이다.


슬퍼야 할 거 같아서 울었다.

그래야 할 거 같아서 좋은 추억을 여럿 심어줬던 드라마의 클립을 봤다.

상담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딱 3분의 2 지점, 거기서 비죽 터졌다.

그제야 날 그토록 미워하던 사람과 사랑하던 사람을 동시에 이해하게 됐다.

난 매번 시기의 문제라는 비겁한 변명 뒤에 숨는다.


일정 연령이 지나면 완벽히 언어를 습득할 수 없는 것처럼

인생 전체에 할당된 사랑의 총합은 사람마다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다.

하필 난 그걸 지금 초과 달성했기에 절박했을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며 정작 제대로 한 판 맞붙어야 할 때는 피했을 수도 있다.

사실 난 모든 관계에 지쳐있다는 걸 그냥 인정만 했지 납득과 공표는 못했다.


양 옆 방향으로 양일 간 걸어보았다.

왼쪽 목동 방면으로 향하는 강변 산책코스,

거기는 일 년도 더 전에 공사 중이었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끝까지 와서야 발견한 안내판 앞에서 내가 돌아가야 된다는 걸 알았다.

10분이면 갈 곳이 40분 걸렸다.


더는 서울에 살고 싶지 않다.

예전부터 나에게 정리란 살던 장소에 그대로 묻어두고 떠난다를 뜻했다.

학장동에서, 용호동에서, 장전동에서, 강녕포와 오리정에서, 양평동에서.

이제 난 어디로 갈까.

가야 할까.


가깝게 바다 한 번 건너면 도착할 수 있는 제주도에서 민박집을 차리는 상상을 했다.

기억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섬이야.

나도 모르지 _ 이름은 파도민박.

혼자 온 여행객 딱 세 팀 정도만 받는 그런 숙박업자 겸 여행가이드.

머리를 빡빡 민 수도승보다는 이게 더 멋진 거 같다.


새벽 다섯 시인데 뿌연 강변 벤치에는 홀로 앉아 콜록대는 노인들이 많다.

부른 시간은 원래 그리도 고독한가.

기억은 자세히 더듬어 보려고 할수록 살살 약을 올리며 꽁무니를 내뺀다.

평소 같았으면 안개처럼 지천에 널려있었을 거면서,

내가 있는 힘껏 슬프고 보고 싶어 할수록 물줄기 같이 속성을 바꾼다.


저장하고 덮어쓰기 하는 기억들에서 나는 빠지고 싶다.

익숙해진 습관에서 비롯된 기억을 삭제하는 건 컴퓨터나 하지 난 못한다.

난 원래 그래, 이 말에 갇혀있으면 기회가 생겨도 답을 미룬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하고 바뀌지 않는 것이다.

깊게 염세하면 깊게 슬퍼진다.


그 어떤 위로보다 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할 걸 아쉬워한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가득 차고 몸이 차질 즈음에야 억지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는데.

무던히 일을 해치워 나가는 사람에게는 그런 칼이 딱히 필요치 않은가.

매일을 쉬어도 매일이 지치는데 어찌 안 그랬을까.

노력의 깊이와 무관하게 느끼는 서운함보다 난 그게 더 서운했다.


죄다 거짓말투성이의 삶이었다.

요란하지만 남루한 빈 수레 옆에 주차한 내 수레는 조용히 휘황찬란했다.

그래야 내가 남들처럼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니 능수능란해졌다.

나를 잃고 나를 얻었다.


한 번도 먼저 잘 잤냐고 물어봐주지 않는 사람에게 날씨를 알려주는 게 내 사랑의 이해였다.

그건 설득력은 없지만 일방적인 진심이 그득그득 담긴 마음이었다.

언제나 기대하면 그 치수의 곱절로 실망하게 되니까.

바라지 않으며 물을 부었다.

그러니 살이 쪘다.


D를 만났다.

추울 때 한 번 보고 더울 때 만나니 홀쭉해진 박서준 같았다.

내 친한 친구들은 죄다 조용한 놈들이다.

내가 말이 많아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맛있는 돼지고기와 맛없는 회를 먹었다.


얼굴을 보고 말을 건네지 않아도 입력값을 얻을 수 있는 키오스크 같이 근황을 알렸다.

어쩌면 너도 내가 단지 그 자리에 있었기에 친구가 된 사람일 수도 있을 텐데.

그냥 그게 좋았다.

그냥이라고 말해도 완력이 느껴지는 그 무던함과 담대함, 단단함이 좋았다.

내가 못 가진 것들이라 그랬다.


같은 날 저녁에 문자 두 통이 왔다.

얼마 전 촬영한 유튜브 콘텐츠 대표의 연락과 아빠의 연락.

둘 다 한순간에 내 기분을 뒤바꾸기에 충분했다.

조건 있는 약속과 조건 없는 사랑에 내가 내 마음을 진짜 놔버렸구나.

누구보다 내가 불쌍해서 침잠하는 기분이 들었다.


대낮에 일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날씨 변화를 한 발 늦게 안다.

충동적으로 인왕산 등반을 떠나며 알게 된 사실이다.

잡념도 무더운 볕 아래 중력을 거스르는 행동을 이길 수는 없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터는 이 어이없게 간편한 메커니즘.

순간순간 끼어드는 슬픔을 발견해도 곧 일시적인 낙담으로 전락한다.


저번과 다르게 큰 물통 하나와 프로틴 음료, 아저씨 수건을 챙겨 나온 낮.

홍제2동 어느 아파트 사이를 비집고 자리한 초입로를 지나 멧돼지가 오가는 길.

세 번 정도 기절할 거 같이 더워서 도중에 주저앉아 바라본 기차바위.

정상의 3분의 2 지점에서는 헤어질 결심의 초반부가 생각났고

곳곳의 추락주의 표지판을 휘적휘적 넘어 드디어 정상.


모든 사람이 미워지는 날씨지만 바람이 부니 제법 시원했다.

조용한 동네의 느긋한 할머니는 좋지만 번잡한 지하철 속 번거로운 할머니는 싫은 것처럼 좋다가도 싫었다.

역시 관계에는 객관이 끼어들 수 없나.

친절함을 잃고 구겨진 얼굴 가득 짜증을 잔뜩 실었을 내 표정을 알 것도 같다.

헷갈리는 마음을 버리기엔 아직 이른가, 심장에 압류 스티커가 찐득하게 달라붙은 기분이다.


이럴 때는 무릎이 망가져도 빠르게 하산해야 한다.

멧돼지는 한 마리도 못 보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새들만 수풀 속에서 봤다.

사직동으로 내려가는 코스 거의 끝자락에서 문득,

이쪽으로 쭉 가면 우리가 어떤 영화감독을 뒤쫓던 서촌 길이 나온다는 걸 알아챘다.

애먼 지름길을 두고 비잉 돌아 경복궁 근방 주택가에 추락하듯 도달했다.


맛있는 걸 먹고 싶었는데.

목적을 이루고 돌아가는 길은 최소 네 배는 어렵고 무겁다.

메밀국숫집은 사람이 너무 많아 보였고 노포 파전집은 무더위를 그대로 흡수했다.

한여름에 에어컨이 없는 가게는 천고의 맛집이어야 용서가 되는데 그래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물 조절에 실패한 라면을 먹었다.


내가 왜 예민한 사람인지를 조목조목 짚어 얘기하기에는 서사가 길다.

긴 건 지루하고 주절대면 애처롭고 변명은 방만하다.

있어서 불쾌한 것보단 없어서 외로운 게 낫나 싶으니 문득 전시가 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무형의 의미에 거리낌 없이 돈을 내니까.

그게 검정치마를 좋아하는 얕은 취향 같은 거라도 상관없었다.


근데 왜 전시실은 죄다 종로, 강남에만 있지.

팍 짜증이 나서 인스타그램만 봤다.

원래라면 보지 않았을 스토리들을 휙휙 넘기며 충동적으로 마구마구 하트를 눌렀다.

그러니 잘못된 자존감이 또 불쑥불쑥 존재감을 세운다.

내 뇌도 릴스에 절여져 있나, 참치캔이 된 기분이다.


다시 한번 전염병이 세상을 휩쓸었으면 좋겠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마스크를 쓰고 저녁에는 집에 가둬버리는 강제성을 부여한 그 상황이 절실하다.

그러면 내 마음이 무너지는 게 억울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승복할 수 있겠지.

몸이 멀어지니 내가 얼마나 널 아끼고 걱정했는지도 믿게 되겠지.

이제는 그때의 내가 나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늘은 정말 내가 딱 한 만큼만 준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은 늘 여러 번의 우연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겹치고 겹쳐야 일어날 있는 일인데.

그게 꼭 당장 일어난 것만 같으니 눈앞의 애정을 잔반처리한다.

이걸 남았다고 해야 하나, 남겨졌다고 해야 하나.

위스키 한 잔에 한 번씩 총 세 번 죽는 마음을 가졌다. 


나아질 거라는 위안, 당연하다.

그보다 좋은 일이야 보나 마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처방이라면 차라리 낫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이제와 잘잘못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시간은 길고 깊게 지난다.

이목구비가 하나씩 잊어지려나 할 즈음 바라본 풍경에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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