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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May 03. 2024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이주연 작가님의 <봄은 핑계고>에 푹 빠진 요즘이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잘 준비까지 마친 저녁 9시쯤, 이 책이 참 읽고 싶어 진다. 아껴서 오래오래 읽고 싶은 마음에 '오늘 딱 두 단락만 읽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책을 펴지만, 읽다 보면 다음 단락이 너무나 궁금해지기에 단 몇 페이지 만으로는 책장을 덮어둘 수 없는 책이다. 

    며칠 전에는, 책에서 작가님의 집 앞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에 대해서 얘기하신 부분을 읽게 되었다. 

그야말로 공기 입자가 향 입자를 태우고 이리저리 날뛰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꽃향기가 넘실댄다.
(봄은 핑계고 p.105)


라고 표현하실 정도로, 그렇게나 향이 좋다고, 그 향을 맡는 행운을 집에서 누리신다고 자랑하셨다! 글 만을 읽은 나 또한 머릿속으로 '향 입자를 태운 행복한 공기 입자들이 날뛰는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이 멋지고 재미난 표현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 동시에 그 좋디 좋다는 아카시아 꽃 향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나에게 아카시아 꽃이란, 서수남과 하청일의 아주 유명한 노래인 <과수원 길>의 가사 중,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에서 등장하는, 어떻게 생긴지도 언제 피는지도 모르지만 이름만큼은 참 예쁘고 뭔가 고급진 그런 꽃이었다. 그래서 바로 네이버에 '서울 아카시아 꽃'이라고 검색해 보니, 아카시아 꽃으로 그리 유명한 곳은 보이지 않았고 내 눈길을 사로잡는 장소도 딱히 없었다. 그렇게 아카시아 꽃은 내 마음속에 고요히 앉아있게 되었다.



    

    어제였다. 여느 때처럼 엄마와 전화를 하며 걸어가는 하굣길에서 내가 

    "나 아카시아 꽃이 너무 궁금해! 그 향을 나도 맡아보고 싶다.. 어디서 볼 수 있을까?"

하며 '왜 이리 보기 힘든 것이야. 궁금하게!'의 느낌을 담은, 약간은 투덜대는 어투로 말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뭐라하노~ 그냥 길에 아카시아 꽃 종종 보일낀데! 어릴 때 다~ 봤다 아이가. 그 왜 하얀 포도송이처럼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거~!"

    라고 하셨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곧바로 답했다. 

    "그런 거 여기 없는데..."

    그 순간이었다. 그저 고개를 들고 흘깃하며 내가 걷는 길을 따라 서있는 나무들에게 아주 잠깐 눈길을 주었는데, 웬걸! 하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어..! 어..?! 엄마 이게 아카시아 꽃인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 같은데?" 

나의 첫 아카시아 꽃

    그렇게 어제, 나는 내가 매일 걷는 길에 있었지만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었던 아카시아 꽃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나의 세상에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어나는, 정말이지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아카시아 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팔방으로 하얗고 자그마한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커다란 나무들에 송이송이 매달려있었다. 그 한 송이, 한 송이의 모습이 참 청초했다. 강렬한 아름다움이 아닌,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수줍은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의 등굣길은 내가 주인공인, 따스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어떤 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면 하얀 아카시아 꽃이 좋은 향을 내뿜으며 방긋방긋 웃어주는 길. 더구나 의도하지 않았는데, 아카시아 꽃처럼 새하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치마를 입고, 꽃의 중간에 소중히 들어있는 암술처럼 노오란 새 신발을 신고 걸어가는 길. 마침 새들이 나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은 듯, 맑은 목소리로 '짹짹' 대답했다. 이것이 현실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 만큼 신비로웠던, 그래서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던 등굣길이었다. 

힘차게, 씩씩하게!



   

    내 입으로 말하기가 조금 부끄럽지만, '나, 아카시아 꽃처럼 참 예쁘게 사는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드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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