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류지 Dec 16. 2024

애증의 2024

25년의 내 인생 중에 아마 가장 힘들었던 해, 2024년. 

사무치게 외로웠고 슬퍼했다. 

내가 고독의 동굴에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더욱더 깊은 곳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이번 연도 1월, 나는 석사 논문을 제출했다. 

그리고 2월, 나는 서울대 석사 졸업장을 받았다. 

"내가 이 학교에서 졸업장을 받다니. '샤' 앞에서 졸업 가운을 입고 사진을 찍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바로 3일 후, 나는 막 졸업한 그곳으로 다시 입학을 했다. 박사과정으로 진학한 것이다. 

이는 작년인 2023년도 하반기에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 

석사 논문을 쓰며 자연스럽게 박사 과정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당시, 다행히도 박사 과정으로의 입학에는 경쟁이 거의 없어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그렇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나의 앞으로의 적어도 5년의 운명을 결정해 버린 것이다. 

그저 다른 생각은 해보기가 귀찮아서, 그리고 두려웠어서, 다른 길에 대한 생각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작년이었던 2023년의 나는 꽤나 들떠있었다. 

나는 연구실에서 칭찬만을 받는, 분위기 담장자 막내였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스페인, 일본 등에서 열리는 학회에도 참석했다. 

나의 많은 주변 친구들이 "우와, 멋지다!"라고 해주었고, 솔직히 나는 이러한 반응을 즐겼다. 

그런 느낌이 처음이었다. 이 느낌은 분명 내가 어릴 적부터 갈망하던 것이었다.

그저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는 한 명의 대학원생이었지만,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어깨가 올라갔다. 

내가 그때 달고 살았던 말이 있다. "내 삶에 이렇게 행복했던 때가 없었어."

가끔 다음 한 마디를 덧붙이기도 했다. "나중에 안 좋은 일이 오려고 하나..? 지금 너무 큰 행복을 누리고 있잖아!" 걱정할 것이 없어서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그리고 이 말이 씨가 되었다. 


그렇게 행복하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던 작년에도 사실 마음 한 구석은 다소 불편했다. 

'나는 다른 동료들, 교수님들처럼 이 학문에 딱히 그렇게 큰 뜻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아, 몰라!'

그리고 이 불편한 감정은 2024년도를 맞아 구체적인 생각으로 떳떳하게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 2024년도에 변한 것이라고는 석사가 아닌 박사과정이라는 이름뿐이었다. 

연구실도, 내가 하는 공부도, 하루의 흐름도 똑같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은 꽤나 많이 바뀌어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미움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나는 많은 것을 미워했다. 학교도, 동료들도, 학문도, 그리고 '배움' 그 자체까지. 

내가 생각한 이러한 미움의 원인들은 사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이곳에 자세히 쓰지는 않겠다.

여하튼, 미움은 내 마음속에서 마치 좋은 장작을 만난 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꺼지기는커녕 그 범위를 빠른 속도로 넓혀갔다.

그래서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내가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 중 하나인 나라는 아이와 아주 친하게 지냈다.  


이 아이는 참 밝아보였다. 어딜 가든 "잘 웃는다, 밝다"라는 말을 듣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속은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밝은 빛을 밖으로 다 꺼내느라 마음속은 어두컴컴 그 자체였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슬픔이 있었다. 밖의 세상을 전혀 보지 못한. 

그래서 나는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썼고, 

이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 돈과 시간을 바쳤다. 

하지만 바로 괜찮아지는 쉬운 아이는 아니었다.

한 달, 두 달, 그리고 반년이 지나도록 조금 나아지다가 다시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사실, 지금도 그 반복을 하지 않고 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봐왔던 이 아이를 이제야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대학의 무슨 과의 누구가 아니라, 그저 한 인간으로서 이 아이가 누군지. 

대학 공부 말고 삶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곳에 가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디서 행복을 느끼는지, 

어디서 슬픔을 느끼는지. 

지금도 이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완전히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처음으로 이 아이의 진짜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 아이는 남은 내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항상 함께해야 할 동반자이다. 

그렇기에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이 아이와 더 친해질 수 있었던 이번 2024년이 참 소중하기도 하다.


그랬다. 애증의 2024였다. 


2025년도 앞에는 어떤 수식어를 붙이게 될까.

친해진 이 아이와 좋은 여행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