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정리엔 기술이 없다
미니멀라이프를 향해 움직였던 것이 벌써 3개월을 꽉 채웠다. 새벽 기상을 시작할 때도 그러더니, 사람이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하는 건 위험하다. 채우는 것과 반대로 비워내는 일을 3개월 하다 보니 탈이 났다. 기존에 단단히 버릇들였던 일들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입는다는 것은 이렇게도 시행착오들이 많다. 번아웃을 가장한 게으름을 털어내고자 지난 주말 북한산을 올랐다. 이미 오랜시간 길을 걸어온 분들이 보기엔 민망한 나의 작은 사건을 말해보고 싶다.
통제하지 못하는 생각은 나를 수령으로 이끈다.
예전에 고백한 것과 같이 나는 비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채우고 채우지 못해 안달이 나 있던 나는 그렇게 부풀리는 것에만 몰두하는 삶을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내 물질적인 생활에서 만의 일이 아니었다. 나는 항상 뭔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한번 떠오른 고민이나 잡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것은 대체로 걱정이나 화, 우려, 초조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가져왔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고민이 많고 물론 그것이 장점화되어 많은 아이디어나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지만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생각은 건강한 생활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며칠 전, 열심히 불태우다 전사한 나의 몸은 흔히 말하는 '번아웃'과도 비슷하고 '현타', '슬럼프' 뭐라고 불러도 좋을 그냥 무기력함이었다. 머리로는 지금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움직여야 하는데 좀 더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도저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 전에도 슬럼프 등을 경험한 바는 있지만 이토록 정신과 몸이 따로 노는 일은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몸은 정말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일주일 넘게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 없이 영화나 만화책, 뜨개질을 좀 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서둘러 올해 버킷리스트를 펼쳐보았다. 지금 당장 뭐라도 좋으니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다. '북한산 오르기' 이 항목은 나름 역사가 있는 것인데, 2018년 등산하기에서 지켜지지 않아 2019년 한라산 or 지리산 등산하기를 거쳐 2020 뉴 버전 서울 근교, '이름 있는' '등산이라 할 만한' 산 오르기로 완성되었다. 허들을 낮춰도 왠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이었는데 그래, 오늘 내가 이 리스트를 지워주마.
인터넷의 힘은 놀라웠다. 월드 와이드 넷. 누가 작명한건지. 산을 오르는 것보다 산까지 가는 것이 영- 어렵게 느껴졌던 나에게 구글이 북한산에 이르는 길과 루트를 찾아주었고 카카오 맵이 내가 족두리봉을 향해 가고 있는지, 비봉에서는 어떻게 내려가야 우리집까지 갈 수 있는지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었다. 몇 년 간 걱정했던 것을 비웃기라도 한 듯 북한산을 찾아가는 길은 허무하게도 간단했다. 오히려 산바위들을 올라가는 내 다리 힘과 높은 고도에 맨 몸으로 매달려야 하는 담력을 걱정했었어야 했다. 그래, 뭐든 해보면 정말 그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별것 아닐 때가 많지, 참. 별 일은 별것 아니라고 으스댈 때 나를 확- 물어 삼켰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런 깨달음에 뿌듯해하며 한참을 바위에 앉아있다 한 산악인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담소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같이 하산을 하게 되었는데 아저씨의 길 안내로 가고 싶던 절에 들리게 되었다. 로컬답게 그 절의 벽에 난 상처부터 변천사 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홀로 더 조용히 머무르고 싶었으나 안내받은 값이 있기에 어디쯤에서 헤어져야할지 불안해했었다. 저 앞까지만 동행하고 이야기를 할까? 아니.. 좀 더 내려가서 저 계단까지? 아니.. 저 앞 정류소까지? 계속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거리를 재던 중 등 뒤로 정오의 종을 치는 소리를 들었다.
"대엥---------" 응?.... 와.. 소리 좋다.. 아.. 맞아 빨리 가야 하는데, 어쩌지.. 그냥.. 일단 내려가고 나중에 다시 올라오면서 다른 사찰들을 가볼까?, "대엥---------" 아.. 아니... 여길 또 언제 올 수 있겠어, 돌아가자.. 내 생각이랑 정리할게 너무 많이 있잖아. 혼자의 시간이 필요해!! "대엥---------"..........
그러니까 정확히 3번째의 종소리가 들리던 순간이었다. 내 안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 나 그러니까, 할 만큼 한 거 아닌가?
할 만큼 했다, 이제 그만해-
그 짧은 순간에 어찌나 속이 죽 끓듯 끓었는지, 변죽이 몇 번을 울린 건지. 내 안은 그렇게 복잡하고 뜨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 때가 놀랍게 느껴진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갑자기 번개를 맞듯 그저 이제 할 만큼 다 했으니 더 이상 머무르지 말고 앞으로 나가도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거에 잡혀 현재를 살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하지 못한 미련만 생각하고 뒤만 돌아보고 있어서 발은 앞으로 가지만 내 정신은 계속 과거에 머무르길 붙잡고 끈덕지게 버티고 있었다.
그래, 이제 그만하자. 그건 지나갔잖아.
맞다. 지나갔다. 지나간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지금부터 해서 안될 것 같은 일도 붙잡고 있지 말고 버리자. 그건 이미 끝난 게임의 일이다. 내가 더 어떻게 해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과감하게 놓아버리자.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이제 거의 연말에 가까워져 가고, 한 해도 끝을 보이고 있다. 특히나 어려운 시기였고 힘들었을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혹 채 이루지 못한 성과가 있더라도 그것에 계속 메여있기보다 과감하게 자르고 털어내 버리고 오자. 지금 움직여야 하는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