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해야 했던 것을 하지 않았구나
반항 가득 중학생을 거쳐 성숙하게 꼬여있는 고등학생이 되고 건들건들 대학생에서 쭈구리 사회인이 될 때까지, 내가 읽었던 교과서와 관련 참고 서적과 문제집과 시험지들은 몇 장일까?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내가 하고 싶은 과목만 공부하는 편차 심한 녀석으로 담임 선생님에겐 항상 골칫거리였다. 고 3 때 담임선생님은 하필 수학 선생님으로 찍어서 맞추는 게 더 많았던 나에게 아무리 그래도 담임이 수학인데 넌 정말 이건 너무한 거 아니니?라는 호소를 듣는 시간을 자주 보내야 했던 것이다.
물론 대학에 올라와서도 이 고얀 심보는 고쳐지지 않았다. 건축 구조학을 듣지 않기 위해 들을 수 있는 모든 과목을 듣고 그 수업을 뺐던 것이 기억이 난다. 매일 내 입에 쓴 건 바로 뱉고 보는 성정에도 마음 한편 미련으로 남은 과목이 있으니 국사, 특히 근현대사가 되겠다.
그렇다. 이 교과서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또 다른 나의 집착이 여기에 있구나. 또 다른 미련이 집 한구석 깊게 똬리를 틀고 앉아있구나. 교과서를 끌어안고 있는다고 해서 내 역사적 지식이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버리지 못하고 여기 이렇게 쌓아두었던 걸까? 분명 언젠간 다시 읽어볼 거야.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근현대사, 국사 관련된 일반서적도 얼마나 많은데. 정말 속상하다.
어떻게든 손에 쥐고 있으면 그 상황이 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서른이 너머서야 겨우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