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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브 Sep 17. 2020

예술로 하는 목욕 어때?

때는 밀어야 하는 건가? | 맥시멀리스트의 미니멀라이프

우선 꼬질꼬질한 때수건을 먼저 들이밀어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래도 비누로 깨끗이 빨아 말렸으니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리겠다.




'행화탕'이라는 목욕탕의 이름이 복합예술공간 붐과 함께 자리를 잡은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아는 사람의 입과 입을 통해 아현동에 뭐, 그런 게 있다더라. 하는 소식을 듣고 느지막이 찾아간 것이 벌써 4년 반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후로 몇 번인가 들락거리다 때수건을 받은 날은 참신하여 빙긋 웃음 짓게 되었다. 역시 공간은 오래 묵은 만큼 그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불쑥 낯설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너희가 우아하게 그림을 보며 반상 앞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는 이곳이 10년도 안된 이 전엔 뜨거운 탕에 앉아 때를 불리던 장소였느니라고. 세상엔 앞으로 얼마나 더 웃음 짓게 하는 공간들이 생기게 될까?

요즘 다시 재개발이니 하는 묵은 유행들 속에 재밌는 공간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길 바라는 건 너무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는 걸까. 과연 누구의 욕심이 더 큰 것일까?


괜히 폼 잡는 이야기를 그만두고 구태여 밖에 나가서 떠들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는 어머니 품을 떠나 혼자 샤워를 한 이래로 때를 밀어본 바가 없다. 내 친구들은 질색팔색 치를 떨며 당장 떨어지라고 성화지만 나는 매일 샤워를 한다. 아니.. 가끔은 2-3일에 한 번이던가. 그래도 오해는 마시라, 사람을 만나는 자리는 항상 몸을 정결히 씻고 나간다. 생생정보통인가 뭐 그런 류의 아침 프로그램을 어머니와 같이 시청하며 피부에 마찰을 일으키는 게 좋지 않는다나 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래, 자연히 탈각하겠지 하는 생각이 지금껏 이어져왔다. 이 녀석을 만나기 전까진. 처음엔 귀여워 고이 모셔놓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어 들고 욕실에 들어섰다. 오마나, 그 날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20년 치 분은 아니겠지?


내 죽은 각질과 함께 떨어져 나간 때수건의 프린팅을 보며, 이제 그만 처분하자는 생각을 한다. 긴 겨울 동안 악성 건조에 시달리는 나는 당분간 때를 미는 일이 없을 것이고 자꾸자꾸 때를 밀고 싶어 지는 충동에서도 벗어나고 싶다.




멋들어진 공간의 사진을 덧붙일까 하다, 주소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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