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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브 Sep 03. 2020

환상에 대한 집착의 개수 134

32년 나의 꿈을 찾아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겠다며 다짐하자마자 가장 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던 것은 책도 사진도 아닌 브로셔와 카탈로그들이었다. 


브로셔를 모으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작은 섬에서 나고자란 나는 '서울'이라는 장소에 로망이 있었는데 거기에 예술이라는 환상까지 더해져 내가 누리지 못했던 생활에 대해 집착을 많이 보였던 것 같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세상에 작가들은 넘쳐났으며 레전드부터 이 씬에서 '핫'하다는 모든 마케팅 수식어에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무지해 알지 못했던 시간들의 공백을 손에 꼭 쥐고 항상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로에 대한 고민에 떠난 첫 해외여행에서는 더 심각했었다. '처음'과 '해외'가 붙어서 초 매가 울트라 파워가 되었다. 베를린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크레이지 걸'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었다. 숙소에서 나가 하루 16-18시간을 걸어 다녔는데 10에 9.5가 뮤지엄 혹은 갤러리 었다. 계산해보면 밥 먹고 자고 싸는 시간 외엔 계속 걸었던 것이다. 둘둘둘 돌바닥 위를 다니는 가방에 공간을 만들고자 점퍼, 운동화, 먹을 것 다 줄였지만 이것, 이 종이들을 버리지 못해 30만원 오버 차지를 지불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평생 이렇게 살다 죽겠구나.


그게 벌서 5년 전 이야기다. 현재의 나는 비움이라는 큰 과제 앞에 아카이빙을 하겠다며 책과 함께 낱장으로 160개의 물건을 찍다가 포기했다. 어쩌면 나의 집착의 개수는 160일 지도 모르겠다. 딱 그만큼에서 멈춰 섰으니까. 160개. 160개를 찍는 동안 이걸 행복해야 할지, 감격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슬퍼해야 할지 도무지 감은 오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이게 나의 역사라는 사실이었다. 나의 환상에 대한 집착은 그렇게 쌓여 잔여물을 남겼다. 가진 것이 없어 오랫동안 품었던 불안함이 늘 더 놓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그 덕에 따라갈 수 있었다. 낑낑대며 살아온 덕에 하고 싶었던 전시디자인도 축제행사도 다양한 경험 했으니까. (물론 아직도 목마르지만) 이제는 손에 잡히지 않아도 내 안에 잡히는 것이 많아 짐을 줄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건방지게 생각해본다.


그 빈곤했던 세월 나의 기쁨은 그렇게 한 장의 사진을 남기고 사라졌다. 


p.s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지금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때 좀 힘들어도 다 찍어 둘걸.. 안에 내용도 다 카피해 둘걸.. 그런 찌질한 아쉬운 생각이 든다. 사람 참 쉽게 안 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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