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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브 Aug 20. 2020

기부는 누구에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니?

'아름다운 가게', '당근 마켓' 물건 나눔

물건을 정리하면서 많은 것들을 분리수거했지만, 버리기엔 아쉬운 물건들이 있다. 책이나 얼마 사용하지 않은 물건, 이따금 가격표도 떼지 않은 새 제품 경우엔 그러니까 정말 진지해지는 것이다.



part 01.

몇 가지 썩 괜찮은 제품은 당근 마켓으로 판매도 해 봤다. 사용했던 물건들은 비싼 값을 주기도 애매해서 적게는 천 원 비싸게는 2만 5천 원 정도로 책정했다. 그런데 뭐 그리 큰돈이 아니여서인지 여러 문의와 위치, 시간 등의 약속 잡는 일들이 번거로웠다. 그래서 거래는 집 근처로 지정해 두고 무료 나눔을 시작했다.


젊은 청년이 16인치 캐리어를 덜덜덜 들고 가고, 어린 학생이 야구공을 들고 가고, 아저씨가 아내를 위해 화려한 방석 두 개를 들고 가는 모습은 나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한 아주머니가 내 다리 마사지를 가져가셨다, 모피를 입고서


그래, 나도 의아했다. 모피라니? 이 날씨에 선글라스라니? 날은 꽤 추웠고 에어컨이 잘 나올 것 같은 검은 세단이 내 앞에 섰지만 그게 나의 다리 마사지기 인수자가 나타날 차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주머니가 길을 잘 못 찾아서였을까, 무료 나눔이기 때문이었을까.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한 선행이 기부라는 내 못된 관념 때문이었을까.


나의 기부에 대한 대상은 누구였을까.

허리 굽은 할머니가 그 길을 나와 나에게 물건을 받아갔더라면 더 좋았을까?



part 02.

계속 여러 차례 특정할 수 없는 시간에 밖을 나가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워지던 차에 '아름다운 가게'가 방문한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신청! 우리가 어떤 민족이던가!!라고 생각했다가 2주 후에 방문한다는 것을 알고 무릎이 꺾였다. 택배 박스 규격에 맞추려고 박스 선발도 엄격하게 하고 인근 마트에서 가져오기도 했는데, 맙소사. 기부를 취소할 수도 없어 2주 동안 6개의 박스를 거실 한편에 두고 생활했다. 가뜩이 넓지도 않은 집에 갇혀 사는 나로서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수령 후 일주일 뒤 기부금이 적힌 문자가 날아들었다.




아니... 책과 옷과 잡화 모든 것을 포함한 물건이 100개가 넘었는데 고작 78,388원이라니. 출판된 지 오래된 책들도 있었지만 좋은 책인데.. 내가 그 책들을 어떻게 가지고 있던 책들인데.. 내 텍도 떼지 않은 등산화ㅜ 지난번에 캐리어로 옷과 신발싸가서 매장 방문으로 기부한 게 46,841원이었는데 7박스가 고작 7만 8천 3백 8십 8원?!!!!


그렇다. 나는 분노했다.

한참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봤던 나는 뒤늦게 그 날 저녁 침대에 누워서야 의아해졌다. 왜?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분개하는가?


이웃을 돕기 위한 바자회를 여는데 내가 물품을 내었다면 이렇게 화가 났을까? 나는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물건을 보낼  소득공제 신고가 가능한 '기부'를 했다. 나는 기부라는 거래를 생각했기 때문에 손해를 봤단 생각에 화가 난 것이다.



부끄럽게도 기부를 통해 내 마음의 편협함을 보았다.

나는 누구에게, 왜 기부를 하려고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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