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bout if I sit over here
☼ 이 글은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데 영- 하기가 싫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을 섞어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시작되었습니다. 가벼운 낙서와 함께 제가 남겨두고 싶은 소소한 이야기 혹은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에 대해 풀어냅니다. 그러니까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쓰는 글이지만 영어보다 한글이 더 많은 글입니다.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이 너무 빨리 움직여서 다들 뛰라고만 한다고, 나는 그게 너무 싫다고. 실제로 그 친구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그것은 한참이나 지나고 난 다음에야 병원에 방문했다고 한다. 의사의 소견이 있고서야 자신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첫 기억은 사람들이 걷는 도로변 가운데서 갑자기 숨이 막히더니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만 해도 턱밑까지 쌓여있던 일의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 말에 이 바보야! 를 외칠 수 없었다. 나 역시 사무실에서 숨이 쉬어지지 않아 건물 밖으로 탈출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회사가, 사회가 나의 숨통을 조인다고 생각했다. 그게 모두 상황의 탓, 상사의 탓, 일의 탓, 클라이언트의 탓, 그러니까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일면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상황까지 몰고 간 건 정말 나의 잘못이 1도 없었을까?
누군가 한국인은 사회의 탓도 내 탓이라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지만, 나는 내가 미련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내 몸은 남이 챙겨주지 않는데, 내가 더 나서서 내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내 몸에 대한 나의 책임. 환경을 탓할 일이었다면 그 환경에 벗어나서 내 한 몸 살 궁리를 했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아무리 내 등을 떠밀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내가 내 숨이 모자라다면 그 보이지 않는 손을 쳐내고 트랙 밖으로 나와 숨을 골라내야 한다. 당장 멈추는 게 어렵다면 속도를 늦춰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괜히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고 했을까. 페이스 조절은 선수의 기량이다. 골인 지점은 사람마다 다르고 가는 길의 상태도 다르다. 내 몸이 과도하게 긴장되어있는 상태라면 작은 충격에도 크게 다치기 쉽다. 때문에 나의 상태를 계속 관찰하고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언제든 넘어져도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내 길을 계속 걸어야 할 테니까.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엘리트의 길'에서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런 팔자 늘어지거나 이해력이 부족한 이야기를 쏟아내는지도. 하지만 내가 잠깐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지도 못하는 삶은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