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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인규 Dec 15. 2024

가치를 따르는 삶, 리빙굿

Be You 레터 Vol. 6

리빙굿 vs 필링굿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것들은 두 가지 범주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필링굿(feeling good), 또 하나는 리빙굿(living good)이죠.


필링굿은 감정적 만족이나 편안함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외부자극에 의해 좌우되고, 순간적인 즐거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재미있는 게임을 하며 즉각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이죠. 필링굿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불쾌함은 극도로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신 즉각적인 기쁨과 즐거움을 중시하며, 단기적이고 종종 피상적입니다.


리빙굿은 보다 지속적이고 깊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스스로 선택한 신념과 삶의 방향성에 따라 살아가는 데서 비롯되는 만족감입니다. 예를 들면, 윤리를 실천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변화를 시도하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실천을 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내적 만족과 지속 가능한 행복을 추구하며, 자신의 행동과 삶의 목적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지향합니다.


쾌락주의의 역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필링굿은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이루어야 하는 지상목표처럼 여겨집니다. 필링굿을 추구하는 삶은 순간적으로는 달콤하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새로 산 옷을 입을 때, 좋아하는 드라마의 다음 화를 기다릴 때 느끼는 설렘은 우리를 쉽게 만족시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즐거움은 빠르게 사라집니다. 배가 차면 음식은 더 이상 달콤하지 않고, 새 옷은 곧 낡아가며, 드라마가 끝나면 허전함이 밀려옵니다.


더 큰 문제는 필링굿만을 추구하다 보면,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거예요. 같은 쾌락을 얻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더 강렬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결국, 행복을 얻기 위한 노력은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들이켰을 때와 같은 끝없는 갈증으로 변하고 맙니다.


쾌락주의의 역설(paradox of hedonism)은 쾌락을 직접적으로 추구할수록 오히려 장기적으로 쾌락이나 행복이 줄어들 수 있음을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공리주의 철학자 헨리 시즈윅(Henry Sidgwick)이 그의 저서 ‘윤리학 방법론(The Methods of Ethics)’에서 언급하였으며, 그는 쾌락이 직접적으로 획득될 수 없음을 관찰했습니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도 그의 ‘자서전(Autobiography)’에서 이 아이디어를 논의하며, 자신의 행복 이외의 목표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종종 행복을 발견하는 반면, 행복을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멸적일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에서 행복은 자신보다 더 큰 목적에 헌신한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지, 직접 추구해서는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빙굿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필링굿이 아닌 리빙굿을 추구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리빙굿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입니다. 쾌락이 아니라 가치입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해 성찰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필링굿이 외부의 자극에서 온다면, 리빙굿은 내면의 신념에서 옵니다.


필링굿과 달리 리빙굿은 즉각적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기다림이 필요하며, 스스로를 단련해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해 식습관을 바꾸고 운동을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피곤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노력은 몸과 마음에 더 큰 만족을 줄 것입니다.


리빙굿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적합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술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밤새워 작업하는 작가, 자식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부모,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혁신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들은 단기적인 쾌락이 아닌,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오는 깊은 충만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삶의 허무에서 탈출하기 위해


왜 우리는 필링굿이 아닌 리빙굿을 선택해야 할까요? 필링굿을 추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데 말이죠.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리빙굿을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 삶의 허무함에 맞닥뜨리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인 쾌락이 사라진 자리는 공허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하지만, 리빙굿을 추구하는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하고 풍요로워집니다. 그것은 마치 좋은 나무를 심는 것과 같아요. 처음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튼튼한 나무가 되어 그늘과 열매를 선물하는 거죠.


삶은 쉽지 않고, 좌절과 실패,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리빙굿을 선택한 우리는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버틸 수 있습니다. 쾌락은 잠깐의 위안만 줄 뿐이지만, 가치는 우리를 살아가게 합니다.


나의 가치를 따라 사는 길


리빙굿(living good)을 추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회가 정해준 '좋은 삶'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각자가 자신만의 가치와 목표를 발견하고, 이를 중심으로 삶을 설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모습이 아니라, 저마다 다르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리빙굿을 추구하는 여정은 먼저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나는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져야 해요. 예를 들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를 떠올리며 그 순간이 단순한 쾌락 때문인지, 아니면 더 깊은 의미와 연결되었는지 성찰해 볼 수 있겠죠. 또,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뿌듯했는가?”를 묻고, 그것이 타인과의 연결이었는지, 스스로의 성취감이었는지 파악하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이 질문들은 내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그 가치는 거창하거나 남들과 비교될 필요가 없습니다. 가족과의 시간, 자기 성찰, 혹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꾸준한 노력처럼 소소한 것이어도 충분해요.


내 안의 가치를 발견했다면, 이제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큰 변화를 시도하다 보면 금세 지치기 쉬워요. 리빙굿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작은 실천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건강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거창한 운동 계획 대신 매일 10분 걷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또는 성장을 원한다면 매일 책 한 페이지를 읽는 작은 습관을 만들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실천이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가치에 따르는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 그것은 나만의 리빙굿으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리빙굿을 실천하는 과정이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우리는 때때로 즉각적인 만족을 선택하게 될 수도 있고, 가치를 놓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조차도 리빙굿의 여정에 포함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를 통해 다시 나의 가치를 되새기고,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신 꾸준히 나 자신에게 진실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가지면 됩니다.


리빙굿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가치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타인과 나누고, 그들의 리빙굿을 존중할 때, 삶의 의미는 더욱 풍부해져요. 예컨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통해 타인에게 도움을 주거나,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는 나 자신의 리빙굿을 강화하는 동시에 세상에 작은 변화를 만드는 행위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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