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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반 친구들(2)

出寫

by 신화창조

오늘은 出寫(출사) 이야기를 주로 하겠다.

막상 사진반에 가입하고 보니 카메라 없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기들 열 몇 명 중에 카메라 가진 애는 3명뿐이었으니까.

그 시절 카메라 없는 것은 당연했고, 없으면 돌려쓰면 되고, 급할 때는 사진관에서 대여하면 된다.

사진관 입장에서는 어차피 현상, 인화를 맡겨주는 고객이니까 저렴하게 대여해 주었다.

(물론 기능이 좋은 카메라는 아니었지만, 아쉬운 대로 쓸 만했다.)

드디어 첫 출사. 1977년 4월 어느 토요일, 대구의 대표 공원 달성공원.

우리 동기 전원, 사진에 대해서는 一字無識(일자무식)이었다.

카메라 원리, 초점 맞추기, 노출 방법 등만 간단하게 교육받고, 선배들 따라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나선 첫 출사.

2학년 형들이 인솔했다. 아마 전통적으로 신입생 첫 출사는 달성공원인가 보다.

그곳에서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졸업한 선배도 우연히 만났다.

연락은 없어도 어림짐작으로 찾아왔다고 하니, 첫 출시로 늘 가는 곳이고 어떤 끌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 뭘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슴 뛰고 설레는 마음은 잊히지 않는다.

이후 3년 내내 수많은 출사를 나갔지만, 그런 느낌은 첫 출사밖에 없었다.

그날 공원을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비가 내리더니~~~” 푸른 시절이었나?

잘생긴 남자 가수가 부르던 노래였다. 김민수?

봄 햇살은 반짝이고,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참 아름다운 봄이었다.

무엇이든 “첫”만큼 강렬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첫”이 끝나는 순간, 인생도 끝나는 게 아닐까.



두 번째 출사는 경주였다.

당시는 대구에서 시외버스로 한 시간 거리.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경주는 사진하는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장소였다.

우리나라 경제에 성장 드라이브가 걸려 있던 시절, 경주는 산업 개발 제한 구역이라 높은 건물도 못 짓고,

오염원도 없어서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었고 하늘도 맑았다.

사진의 생명은 해상도인데, 그렇게 조건이 갖추어진 곳이 많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피사체가 상에 붙어 주는 것. 그것만큼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지금은 멀리 살아 자주 가지 못하지만, 아직도 경주가 나는 좋다.

두 번째 출사의 목적은 3학년 형들과 마지막 출사 동행이었다.

출사를 마치고 3학년 형들은 대학 입시 준비에 전념해야 하니까, 암실 방문도 거의 못할 것이다.

(사실 3학년들은

암실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도, 암실 중독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새 발은 암실로 향해 있었고, 운동장을 한 바퀴 빙 돌아 등하교를 하곤 했다.)


1977년 경주 출사의 기억도 첫 출사 못지않게 강렬했다.

17살 우리들 1학년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어른 비슷한 19살 3학년 형들은 멋짐 그 자체였다.

다른 건 하나도 기억 안 나고, 형들이 다니며 코러스 맞춰 부르던 노래.

‘하사와 병장의 노래 목화밭.’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

그때 처음 들었던 노래, ‘와~~~’ 정말 아름다운 노래였다.

https://youtu.be/LMLB6nzjiLA?si=C_V2YzIr5pxtnCY6



48년 전 이야기다.

목화밭은 지금도 나의 노래방 18번 중 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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