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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Oct 14. 2023

100번째 이야기

이야기들의 이야기

얼마 전에 글을 쓰고 나서 보니 내가 써둔 글이 99개였다. 글을 100개나 올렸으니 뭔가 소회 같은 것들을 적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쓰던 글을 남들도 보여주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서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했다.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조촐한 구독자를 가지고 있지만 꾸준히 글을 써온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맛집이야기 먹는 사진 올리고 먹는 사진을 서로 좋아요만 누르고 싶지 않았다. 하루종일 직장에서 돈 벌고 친구들 만나서 부동산, 주식, 투자 사업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다. 경쟁하고 비교하고 나를 개발해서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과 그 노하우 공유 말고 다른 게 하고 싶었다.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거 하고 싶었던 친구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누비던 처음 보는 골목의 정취를 얘기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귀동냥으로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먼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와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것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조촐한 나의 이야기에도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읽으러 오기도 했고 좋아요가 폭발하기도 했다. 그것도 잠깐이고 내 이야기들은 조금은 사변적이고 조금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아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살아서 만들어진다.


어떤 이야기들은 살아서 수천 년을 이어져온다. 금기에 대한 이야기, 위대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고난을 이겨낸 이야기, 사랑을 하는 이야기는 수천 년을 살아서 이어져 온다.


나는 그런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잘 모으고 길러서 다시 풀어놓고자 한다.


- 이야기들이 복수하는 이야기


옛날 어느 고을에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총각이 살았다.


이 총각은 재미있는 이야기, 신기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 이야기를 잘 듣고는 자루에 넣고 묶어 두었다.

총각이 장성하여 장가갈 나이가 되었다. 옆마을에 좋은 신붓감을 만난 총각은 혼례를 치르기로 하였다.

총각이 결혼을 한다고 하자 자루에 갇힌 이야기들은 불만이 많아졌다.


"총각은 저렇게 장가를 가는데 우리는 여기에 갇혀 있구나!"


"이야기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소문도 듣고 해야 되는데 이렇게 갇혀 살다니!"


"우리를 이렇게 가둬둔 복수를 하는 게 어떨까?"


"좋은 생각이다. 나는 내일 독이 든 딸기로 변해야겠다."


"나는 내일 날카로운 돌이 되어 맞절을 할 때 박히겠다."


"나는 독사로 변해 신혼방 이불속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야."


"그래 좋아 어디 우리를 가두어둔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자"


이야기들이 이렇게 흉계를 꾸미고 있을 때 총각의 몸종이 방밖에서 이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다음날 신랑의 말을 견마 잡고 장가길에 올랐다. 한참을 가니 날도 더운데 신랑의 눈에 소담스러운 딸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얘 작은 노미야 저 딸기들이 참 소담하고 좋구나 마침 날도 더우니 잠시 쉬었다 가자"


"도련님 신부님이 눈 빠지게 기다리십니다. 잔치집에 가면 산해진미를 먹을 터인데 저런 산딸기는 지나가시죠"


평소 답지 않게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머슴이 괘씸했지만 총각은 경사 날 대거리를 하기 싫어 조심조심 따라갔다.


잔치집에 도착해서 모든 것이 얼떨떨한 첫 혼례 준비를 하고 일가친척이 다 지켜보고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신부의 얼굴을 흘끗흘끗 보며 더 긴장이 되는 혼례식이다. 주례 선생의 지루하고 긴 식사가 끝나고 드디어 신랑 신부 맞절을 올리게 되었다.


신랑이 들뜨고 기쁜 마음에 큰절을 넙죽 올리려는데 갑자기 몸종이 뒤에서 몸으로 슬쩍 밀어 옆으로 자빠지게 되었다. 동네사람들과 일가친척들은 갑자기 일어난 이벤트에 박장대소를 하였다.


"신랑이 이렇게 몸이 허하여 첫날밤은 어찌 치를꼬?"


"아니 너무 힘이 넘쳐서 벌써부터 막 땅바닥에 뛰어드네"


짖꿎은 사람들이 농을 던지자 얼굴이 붉어지고 화가 솟아올라 몸종을 쳐다보니 딴청을 피우고 있다. 혼례만 치르고 필시 경을 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잔치는 무르익어 혼례날 밤이 되었다. 신랑과 신부는 합혼주를 마시며 첫날밤을 치를 준비를 하였다. 서로 부끄러워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애꿎은 술만 마시다가 신랑이 드디어 용기를 내어 자리로 들려고 하였다.


갑자기 와장창 소리가 나며 몸종이 낫을 들고 뛰어들었다.


"이놈 이게 무엇을 잘못 먹었느냐! 대체 왜 이러느냐"


신랑과 신부는 혼비백산하였다. 몸종이 원앙금침을 들추자 팔뚝만 한 독사가 그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잔뜩 독이 올라 달려들었다. 하지만 시퍼런 낫에 모가지가 끊어졌다.


그제야 몸종은 어제 이야기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얘기를 해주며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신랑은 날이 밝자마자 집으로 가 이야기들을 풀어주었고 그때부터 이야기들은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며 살게 되었다.


어릴 때 재미있게 읽은 전래동화를 옮겨본다. 이야기를 만들어 올리면서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재미있는 이야기꾼이 만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재미난 이야기를 꽁꽁 숨겨두고 안 해주거나 이야기를 가두어 두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화를 입을 것이며 사람들은 이야기를 엿듣고 또 이야기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그냥 재미있자고 만든 우스갯소리가 아닌 뼈 있는 이야기이다.


대저 이렇게 살아있는 이야기의 이야기로 나의 100번째 이야기를 기념하며 나의 이야기들도 이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이야기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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