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연애담
오늘 들어와 보니 내 크리에이터 분야가 여행에서 연애로 바뀌었다.
나도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잘 모르는데 아마도 키워드로 분석한 게 아닐까 싶다.
요즘에 내가 연애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썼었나.. 아마도 사기와 신점 본얘기 사내연애 하는 얘기를 많이 써서 그런가 보다.
기왕 연애분야 크리에이터가 선정된 기념으로 라떼 연애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이러면 쉰내 나는 내 연애 얘기에 놀라서 분야를 바꿔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연애관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 같다. 라떼에도 70년대 80년대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무드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나오는 연애에 몰입이 되지 않는 것처럼 요즘 세대 연애는 내가 풋풋한 연애를 하던 몇십여 년 전과는 또 다른 것 같다. 사실 누가 연애라는 말을 쓰나.. ㅋㅋㅋ 썸이서나 남자 친구 여친이다. 연애랑 애인이라는 단어는 벌써 지금 과는 감성이 하늘과 땅 차이다.
90년대 2000년대의 연애는 기다림과 애절함, 그리움이 없다면 연애가 성립하지 않았다. 그전 세대는 내가 연애를 할 나이가 아니라 직접 느껴보진 못했다. 아마도 70-80년대에는 조금 더 매운맛의 순애보처럼 기다림, 수줍음, 인내, 순정 따위의 감정들이 시대의 연애를 대표하는 것 같다.
70-80년대는 편지지에 가득 몇 장이고 편지를 보내고 오랜 시간 뒤에 만나서 서로 차 한잔 마시면서 말없이 웃는 그런 감성이라면 90-2000 년대는 문자를 주고받으며 자기 전에 밤새 통화를 하는 그런 감성이다. 요즘은? 쿨하게 썸을 타고 연애는 함께하는 즐거움이지 무엇인가를 기다리거나 희생하지는 않는 것 같다.
뮤직비디오나 노래를 보면 적나라하다. 90년대 노래는 일단 연인이 죽었다. 죽었는데도 기다리고 사랑한다. 혹은 연인을 위해 죽는다. 눈도 뽑아 준다. 참.. 사랑 어렵게도 했다. 2000년대는? 나 짱쎄 내가 좀 잘 나가는데 너 나 좀 만나볼래? 당당한 우리 광야를 달리며 한번 만나보자. 뭐 다른 사람을 만나? 그럼 빠이~ 이런 커다란 감성의 차이가 있다.
(이 뮤직비디오가 충격이었는지 미국 어느 만화에서 왜 한쪽만 기증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둘 다 보이는데 이런 풍자를 봤다. ㅋㅋㅋㅋ)
예전의 연애가 사랑하는 사람과 설렘이라면 요즘의 연애는 아직은 잘 모르는 사람과 썸을 탈 때의 설렘이 더 큰 것 같다.
예전에는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할까? 고백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진실한 마음이 통할까?라는 고민을 했다면 지금은 썸인가? 썸붕인가? 그린라이트인가? 그냥 친절한 것인가를 고민한다.
뭐 요오즘 사람들은 너무 가벼워 이해할 수가 없어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라떼에 도 이미 연락이 되지도 않는 이미 헤어진 사람을 가슴속에 품고 매일매일 편지를 쓰고학 천마리를 접어 선물하던 감성은 이제 우스워졌지 않나?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은 또 우리 세대가 너무 가벼웠다고 했으니 말이다.
가끔 그 시절 영화인 중경삼림이나 봄날은 간다 따위의 영화가 리마스터링 되면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한다. "저거 범죄 아니에요?", "배우들이 대사를 안 해요...", "감정선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등의 반응을 보게 된다. 시대가 변해 버린 것이다.
표현 방식도 그렇다. 지금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유지태는 이영애에게 "사랑해요", "결혼해요" 대신 "아버지가 한 번 보자고 하시네요.", "김치가 맛있네요."라고 한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하지만 이영애는 이 말에 담긴 속뜻을 캐치하고 "저 김치 못 담가요."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이별을 선포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도 결국 계속 다가오지만 답답한 유지태에게 이영애가 보내는 "우리 만나볼까요?"를 에둘러 말한 것이다. 요즘 신세대들처럼 "자고 가라"의 돌려 말하기가 아니다.
옛날에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몇 번이고 고백을 하고 집 앞에 찾아가고 불쑥 나타나 편지를 내밀었다. 그렇다면 상대방은 그것이 나를 스토킹 한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토킹 범들과 감정이 일방통행했던 빌런들이 이런 감정들을 오염시켰다.
생각을 다시 해보니 그랬다기보다 시대가 발달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를 알릴 기회가 많아졌다. 마치 지금 길거리에서 길을 물어보는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거나 포교 중인 종교인인 것과 같다.
지금은 다들 핸드폰을 보고 길을 찾아간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그것처럼 예전에는 남녀가 만날 일이 거의 없었고 커뮤니티가 만들어져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잘 몰랐고 버스정류장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마주치면 무작정 좋아하고 스스로의 감정에 취해 편지를 썼다.
지금은? 지금은 번따 선수들과 픽업 아티스트들이 아닌 이상 학교에, 회사에, 각종 취미 모임들이 많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만나기 전에 이미 알고 친구 사이처럼 지내다가 고백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감주나 클럽을 제외하고) 상대방에 대해 알고자 하면 SNS를 하면 된다.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도 이미 나의 취향이나 성격에 대해 서로가 잘 안다. SNS에 질리도록 쓰여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잘 모르는 사이에서 연애를 하고 알아갔다면, 현재는 이미 알고 만나던 사이에서 연애로 선을 넘는가 마는가 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고 썸을 타고 연애가 썸보다도 더 좋은 것이다. 썸+구속과 책임감이 연애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는 만나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아는 사이에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우리 부모 세대는 결혼부터 하고 만나고 알게 되었다.
이런 불과 몇십년 사이의 변화다.
이런 감정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몇 년이고 혼자 좋아하다가 편지를 써서 고백하고 다시 몇 년이고 기다리는 그런 10년 장 담그기 장인 같은 연애를 이해할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90년대 2000년대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 라떼의 로망
이화여대 정문에는 바보 지정석이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거기에 이대생들을 좋아하는 바보들이 꽃을 들고 서 있다는 것이다. 나는 놀랐다. 우리 때는 그 자리가 용기 내서 고백하는 승자들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의 변화 역시 시대가 변해서가 아닌가 본다.
여대에서 여대생들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줄다리기를 하고 고사상을 차리면 연대생들이 쳐들어와서 상을 뒤집어엎으며 문화와 전통이라고 깽판을 치던(한 문장에 현대에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 몇 개가 들어간 것인지...ㅋㅋㅋ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2000년 이후 얘기다.) 멀리서 보면 낭만 가까이서 보면 야만의 시대였다. 고사상 뒤집어 없고 서로 머리 끄덩이 잡고 싸우던 둘이서 어느 날 눈이 맞아 정문 지하로 다니는 지하철 머리를 밟겠다며 콩콩거리다가 들켜서 도망가던 낭만이 있었다.
경의선이 사라지기 전의 이화여대 사진을 찾으니 흑백사진이 나온다.... 아니... 분명 2000년대 까지도 저게 남아있었는데... 내 추억은 칼라인데 사진은 흑백이다..
데이트거리도 없어서 이대 후문에서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플라타너스 낙엽과 동그란 열매를 발로 차며 진지한 얘기들을 했다. 나중에 그 길을 같이 걷는 연인들은 무조건 깨진다는 괴담을 듣고 슬펐다. 그 괴담은 사실이라고 현재 확인되었다.
김밥을 싸서 가평으로 기차 타고 여행을 갔다. 남이섬에서 자전거를 타며 타조 먹이를 주는 데이트를 하고 행군하는 군인들을 불안한 눈으로 보던 그 시절의 연애가 그리워진다. 핸드폰에는 문자가 20개 밖에 저장되지 않아 처음 나눴던 대화를 저장해 두고 헤어진 뒤에도 그 문자를 보면서 가슴 시큰해지던 감성이 그리워진다.
.... 이렇게 쉰내 나는 연애사를 써도 나를 연애 크리에이터로 계속 둘 것 인가.. 한번 보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