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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민 Jul 16. 2024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이름조차 없는 창조물

이 책을 읽고 선입견이 얼마나 컸는지 혹은 내가 얼마나 왜곡해 알고 있었는지
그야말로 충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처음엔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열심히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 모두 나와 같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으며 의외의 내용에 흥미로워했다.

우선 저자부터가 범상치 않다.
열아홉 살에 이 책을 쓴 영국인 메리 셸리는 당대 최고의 지성을 보고 만나는 환경에 있었다.
아버지는 정치사상가이고 소설가이며 어머니는 이름난 지식인이었다.
그녀를 낳고 산욕열로 숨진 어머니를 대신해 계모 손에 자라지만 돈독한 부녀 사이를 질투한 계모는 교육의 기회를 박탈한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수백 수천 권의 책을 독파하고 집안에 드나드는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지적 허기를 채우다가
아버지의 제자 유부남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사랑의 도피를 하고 동거 중 아들을 낳는 등 평탄치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유의미한 그녀의 일대기를 찾아 읽고 싶다.

아무려나 괴물의 대명사 프랑켄슈타인.
뇌리에 깊이 각인된 이미지는 온몸을 꿰맨 자국 섬뜩한 흉터와 거대한 체구다.
만화와 영화로 패러디하고
뮤지컬까지 다양하게 각색된 공포물.
원작과 얼마나 다른지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너무 놀랐다.
말을 이렇게 잘하는 괴물이었다고?
언어를 익히고 생각이란 걸 하며 우연히 얻은 책으로 독서 능력까지 채워 스스로를 교육한다.
박식하고  똑똑하고 심지어 인간애와 박애감 장착한 (이런 것이 매력이라 하면 괴물에 어울리지 않는 칭찬일까?)
무엇보다 내가 느끼기에 진정한 우아함을 지닌.
아마 그 당시 나는 그에게 빠져도 보통 빠진 것이 아니었다보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다.
그를 창조한 과학자의 이름이며 애초에 괴물에겐 이름조차 없다.
시체를 이용해 마음대로 생명을 만들어 놓고 흉측한 모습에 놀라 창조물을 방치한 채 도망간 과학자.
아버지 같은 존재 프랑켄슈타인을 쫓는 괴물의 마음 아픈 이야기.

북극 원정을 하는 월턴 대장의 배에 구조된 프랑켄슈타인의 목소리와 괴물의 육성을 사촌 누이에게 편지로 전하는 액자 소설이다.

선한 마음을 지녔으나 누구든 그를 보면 경악하고 사람이 먼저 공격한다.
살기 위해 사람들을 헤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
그와 똑같은 여자 괴물을 만들어 주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둘만 살겠다고 한다.
과연 그 여자 창조물도 괴물을 좋아할 수 있을까?
괴물의 합리적(?) 간청과 납득시키기 위한 수사학적 달변에 나는 자꾸 멈추었다.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다.
차라리 슬픔이 공포였던.
세상 누구와도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절대 고독에 빠진 괴물.
인간 본성과 그에 대한 고뇌.
과학 이면의 비윤리적 행위.

진지하고 아름답고 품위 있는 어휘와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에게 나는 약하다

그가 괴물이라 할지언정.
괴물을 만든 건 인간이다.
그리고 이 책을 쓴 사람은 열아홉의 메리 셸리.
과학서적이면서 사회 문제를 다룬 소설이고 여느 인문학 서적 못지않다.
내게는 그렇다.
조만간 다시
괴물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다시 읽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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