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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민 Aug 13. 2024

내 인생의 플레이 리스트

음악 소설집을 읽다가

가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건 일곱 살 때다.
엄마는 나를 또래 보다 1년 일찍 학교에 보내 놓고는 피아노까지 치게 했다.
당시는 학원이 아니고 집에서 가르치는 야매 교습소 개념이었다.
소질이 없었던 건지 강압이 싫었던 건지 나는 피아노 치러 가는 날이 그냥 싫었다.
선생님의 딱딱 거리는 회초리 같은 막대기도 싫었고 똑딱똑딱 정신 사나운
그놈의 메트로놈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딸만 셋인 우리 집에 엄마는 호루겔 피아노를 들이면서
딸 하나 정도는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바랐는지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딸 셋 중 피아노 전공자는 하나도 안 나왔으며
검은색 호루겔 피아노는 내가 결혼하면서 가져와
후에 내 딸들이 이 피아노로 교습받게 된다.
그리고 몇 해전 아무도 치지 않는 호루겔을 처분했다.
나보다 남편이 왜 그렇게 서운해하던지.
이제와 생각해 보면 손가락이 길고 손도 작지 않은 나는 어쩌면
피아노 치기 적합한 조건일 수 있었는데.
압박하지 말고 좀 더 기다려 주는 엄마와 선생님이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좀 더 늦게 시작하게 했던가?
쓸데없는 if를 핑계처럼 갖다 댄다.

그러던 내가 클래식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된 건
고등학교 음악시간 듣기 평가를 통해서다.
슈베르트의 '음악에 붙임'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열성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베토벤의 '이히 리베 디히'와 더불어 지금도 좋아하는 성악곡 중 하나다.
미미미솔 파레파라 솔미솔 도도시 라라솔로 시작하는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계명을 외워야 했고
바흐와 헨델, 비발디의 '사계'와 '조화의 영감'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 그 이름도 황홀한 월광 비창 열정을 정확히 알았으며
연말에 헨델의 메시아를 들었다.
주요 작곡가들의 오페라 아리아와 우리 가곡 미국 민요에 이르기까지.
점심시간 알리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졸다가도 잠을 깨게 하는 마법의 소리였다.
그것이 기반되어 클래식 음악 즐기는 아버지 영향 따라
나의 인생에 클래식이 꽃피게 되었다.
비록 악기는 다룰 줄 모르나 듣는 귀가 있으니 그것도 행복하다.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음악 켜는 일,
하루 마감하고 제일 늦게 들어가며 음악 닫는 일.
중간의 하루 일상이야 달라진다 해도 이 두 가지는 벗어나지 않는다.
나의 정서는 부족하지 않다.
음악 듣는 귀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클래식이 있다는 건 삶의 축복이다.
내게로 와 의미가 된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은 시골에 도착했을 때(부제)의 느낌을 알기에
친근할 수밖에 없다.
시부모님이 계시던 그곳이다.
장맛철.
비 오는 밤에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과 커피 마시며 듣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커피 칸타타.'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충분한 나의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 에세이를 읽다가 <음악 소설집>까지 손에 들었으니,
짱짱한 라인업 누구의 음악을 먼저 읽어야 하나?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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