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욕 타임스가 발표한 2000년부터 25년 동안 출간된 21세기 책 100권 중 최고의 책 1위로 선정되었다. 으음? 엘레나 페란트의 이탈리아 4부작이? 이 책에 빠져 지내던 몇 년 전이 떠올라 반갑다.
작가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우선 엘레나 페란트란 이름은 필명이다. 한 번도 얼굴을 내보인 적 없으며 "작가는 작품으로만 보여 줘야 한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모든 사항은 이 메일로 처리한다. 심지어 이 작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불분명하다고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신비를 넘어 철두철미한 작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여성 작가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섬세하고 미묘하고 복잡다단한 여성들의 심리를 파헤치기란 당사자가 여성이 아니고서야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란(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때문이다. 당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며 왓차 TV로도 방영된 바 있다(나는 찾아보지 않았다) 방대한 대하소설이라 말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를 시작으로 제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제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제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어린 시절 주인공 릴라와 레누를 중심으로 주변 확장하는 이 소설은 이탈리아 사회상과 대대적인 부패 추방 운동 등 사회 개혁을 담고 있어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 가며 읽는 재미도 있다. 이런 면에서 한 개인의 성장 이야기라기보다 대하소설에 가깝다. 그 가운데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와 배경 서사가 대단해 나의 교양과 시사 문제 역사의식이 함께 높아짐을 느낀다. (소설이란 장르가 내게 주는 메리트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내면에 간직한 힘을 폭발함으로써 생동감 있는 여성상을 보여 주지만 단지 여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마지막 권 마지막 부분을 다 읽고 나는 다시 첫 권 첫 문장으로 돌아왔다. '오늘 아침 리노의 전화를 받았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단 말인가?
얽히고설킨 운명 속에 각자의 다른 삶을 살게 된 두 여자와 그 주변 이야기. 배경과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 이탈리아 이름이 낯설고 어려워 인물 소개란에 책갈피를 끼워 두고 확인하며 읽었다. 그 외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소설이지만 가독성 확실한 이 책을 읽으며 엘레나 페란트의 팬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 없음이다.
몇 해전 내 생일에 이 책들을 안고 나를 찾아온 '나의 눈부신' 친구가 생각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