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박완서 선생님은 늦은 밤 잠든 남편 옆에 엎드려 글을 썼다고 했다. 당시 그 글을 읽고 나는 안도했던가? 상상보다 확실한 형상에 혹은 가정 주부로서의 소박한 글쓰기란 이런 거구나 싶어서. 대가의 시간과 공간을 나와 겹쳐 보곤 했다. 세월 흘러 선생님의 당당한 서재를 매체에서 보았다.
나는 흡족했다. 나도 흉내 낼 날이 있을 것 같았다. 작가에게 글 쓰는 환경은 중요하다. 이 책 <글 쓰는 여자의 공간>은 여성 작가 35인의 사적인 글쓰기 공간을 소개한다. 어디에서 썼을까? 어떤 방법으로 썼을까?
제인 오스틴은 그 시대에 여자로서 소설을 쓴다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그녀의 벽돌집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식탁에 앉아 글을 썼다. 세계 명작이 생긴 가장 작은 테이블이다. 샬롯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역시 그녀들이 있을 곳은 집뿐이었다.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지내며 부엌에서 글을 썼다. 영국의 계관시인인 남편 테드 휴즈만큼 재능이 출중했던 실비아 플라스. 불안한 결혼 생활 중에도 육아의 부담 속에 부엌에서 글을 썼으며 방해받지 않고 글쓰기에 몰두할 수 있던 유일한 시간이 새벽이었다고 알려졌다. 끝내 가스 오븐에 머리를 넣은 채 자살한 그녀를 나는 오래 생각하곤 한다. 호텔을 주된 생활공간으로 삼아 머물렀던 시몬 드 보부아르는 카페에서 글을 썼다. 그녀는 일생 동안 일체의 가정사를 거부했다. 가사는 여자들의 자유와 삶, 글쓰기를 방해하는 덫이라고 여겼다. 그런가 하면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건 상관없다고 말하고 사람들이 나를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글을 쓴다는 작가가 있다. 그들은 아무 데서나 글을 쓴다. 즉 세상을 집처럼 여긴 작가들이다. 책상에 앉으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고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글을 쓴다.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가 천국이라고 말한 울프의 낙원은 서재다.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로 유명한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오전엔 침실의 침대 위에서 잠옷을 입은 채 글을 썼다. 아흔 살의 나이에도 매일매일 글을 쓰며 고된 작업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일이라고 밝혔다. '튼튼한 책상과 타자기' 외에는 필요한 게 없다고 한 추리소설의 대모 애거사 크리스티의 발언은 비장하다. 면면히 유명한 그녀들의 일화는 끝이 없다. 나에게 상상을 허락한다. 침대에서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등, 어디서나 글을 쓰던 나의 선생님들. 나는 지금 카페에서 글을 쓰지만 나만의 책상이 있다는 행복을 절감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