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들 Jan 05. 2021

노력이 뭔데? 일단 타고나면 게임 끝이야,<퀸스 갬빗>

결국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 건 1등 뿐이야.

   올해의 마지막날이다. 어차피 시간이나 날짜 따위의 것들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정해놓고 가름 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년 12월 31일, 1월 1일만 되면 평소에는 입도 뻥끗 하지 않았을 이런저런 말들을 주고 받으면서 호들갑을 떤다. 인스타그램에도 여지없이 이런 호들갑 섞인 정신없는 글들이 난무한다. 공부하다 머리 좀 식힐 겸 잠시 들여다 본 건데 기분만 잡쳤다.


   <다들 올 한 해도 열심히 사느라 고생 많았어요! 내년에는 더 더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내새꾸들 오랫동안 못 봐서 넘넘 아쉽ㅠㅠ 내년에는 꼭 다들 뭉치자!>


   <올해도 여러분과 함께여서 기쁘고 행복했어요. 저 또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인데 제 일상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힘들었지만 돌아보니 이룬 것도 많았던 2020년. 무엇보다도 전보다 책과 더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아 뿌듯하다. 올해 읽은 50권의 책, 모두 추천할 만 하다. 내년에는 더 부지런 떨어서 100권 읽기에 도전!

#버킷리스트 #드디어이뤘다 #내년엔더성장하는내가되길 #뿌듯뿌듯 >


   그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각자의 소회를 구구절절 써서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올린다. 기쁨, 후회, 홀가분, 절망, 슬픔, 덤덤, 아쉬움 등 각양각색의 감정들이 글 위에 겹쳐진다. 어떤 공간에 어떤 글을 올릴 것인지는 순전히 본인의 선택이지만, 나라면 절대 그런 글들을 쓰거나 업로드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행위들은 그저 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기 합리화 내지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 내겐 전혀 쓸모 없는 행위일 뿐이다.


   글을 업로드 하는 사람들 만큼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연예인이나 이름 좀 알려진 인플루언서의 계정에 가서 그들이 올린 글에 친한 척 하면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 한 번도 현실에서 스친 적 조차 없을 것이다. 짧은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함께 커피를 마셔본 적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SNS에 올라온 몇 장의 사진과 짧은 글만 보고 그 사람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지인인 것처럼 언니, 언니 혹은 XX님~ 하면서 댓글을 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내가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서 이런 일들을 겪어본 적 없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원래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 건데 나만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걸까?


   가족들은 내가 공부밖에 모르는 애라서 사교성이나 친화력, 사회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며 대놓고 이야기한다. 동시에 공부는 못 해도 심성 착하고 남을 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 친근감 있게 행동할 줄 아는 성격을 가지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며 은근하게 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낳고 키워준 부모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말은 틀렸다. 조금 틀린 것도 아니고 완전히. 그리고 이게 그들이 가난한 이유다.


   좋은 성격은 돈이 만들고 세상이 빚어내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 삶이 힘든 사람은 여유를 가지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성격이 좋을 수 없다. 돈이 있으면 힘든 것, 싫은 것, 귀찮은 것 모두 돈으로 해결할 수 있고 자연스레 성격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돈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금수저로 태어나거나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으로 1등을 해서 성공하는 수밖에 없다. 전자는 애저녁에 글러먹었다. 나는 후자로 가야만 한다. 선택지는 없다. 1등만이 답이다.






   “TV 볼륨 좀 낮춰! 1년 내내 그놈의 트로트! 나 공부해야 된다고.”


   연말이면 TV에서는 각종 시상식이 열린다. 이 또한 그들만의 리그일 뿐인데, 내가 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이름도 모르는 누구 누구한테 고맙다며 수상 소감만 10분을 늘어놓는 것을 왜 보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일상에서의 일들로 심신이 지친 우리를 위해 자원봉사 차원에서 TV에 출연해 웃음을 주는 게 아니다. 그들은 엄연히 출연료를 받고 있고 방송 출연으로부터 발생한 인지도와 인기로 CF나 홈쇼핑에 진출해 모델로 활동하며 더 큰 돈을 번다.


   오히려 상은 그들의 터무니없는 우스갯소리를 1년 내내 시간 내서 봐준 우리들이 받아야 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TV 앞에 앉아 3, 4시간씩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연말인데 하루 쉬지 그래? 이리 와서 앉아서 같이 봐.”


   볼륨은 여전히 낮춰지지 않았고, 트로트를 따라 부르던 엄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엄마, 나 이제 고3이야. 진짜 중요한 시기라고. 쉴 시간이 어디 있어?”


   “하루 이틀 쉰다고 시험 못 보고 등수 떨어질 거면 그건 어차피 공부했어도 떨어질 등수였던 거야. 괜찮아, 하루쯤은. 이럴 땐 가족들하고 시간도 보내고 해야지.”


   “그건 엄마 생각이고. 나는 불안해서 공부해야겠으니까 안 도와줄 거면 방해나 하지마.”


   “야, 언니 너 말투가 왜 그래? 그냥 안 본다고 하면 되지, 왜 엄마한테 난리야.”


   우리집에서 제일 멍청한 동생이다. 반에서 5등 안에는 들기 때문에 구제불능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처럼 꽤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1등이 아니라면 내겐 다 거기서 거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저 아이는 현재에 만족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에 만족하는 순간 도태는 시작된다. 도태는 곧 죽음이다.



   난 늘 1등 할 자신이 있었고, 1등을 해야만 했다. 과외와 학원에 돈을 처바르면서 부모의 엄청난 서포트를 받는 경쟁자들과 달리, 급식비도 제때 못 낼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도 타고난 좋은 머리 덕에 혼자만의 힘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1등을 놓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깔보이지 않기 위해, 나를 세상에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1등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장학금을 계속해서 지원받기 위해서도.


   다행히 나는 얼굴이 꽤 예쁘게 생겼다. 같은 반 아이들은 방학 때면 부모를 졸라 눈 위에 줄을 긋거나 콧대를 매만진 후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나는 타고난 외모 덕에 굳이 저런 방식으로 돈과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또 노력하지 않아도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고 그들은 하나같이 내게 호감을 보인다. 가난한 부모는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다행히도 내겐 타고난 지능과 외모가 있다.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부족했다면 나는 아마 진작 죽으려고 했을 것이다. 못생긴 전교 1등보다는 백치미 있는 예쁜 애가 낫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쟤는 예쁜데 머리까지 좋아. 신은 불공평해. 쟤한테 다 몰빵했잖아”라는 말을 듣는 거다. 난 이미 인생에서 8할의 성공은 거머쥔 셈이다.


   “야, 넌 닥쳐. 그리고 들어가서 공부 좀 해라. 그렇게 해서 서울 끝자락에 있는 대학이라도 가겠냐? 그것도 성적이라고 받아와서 방학했다고 방바닥에 누워있는 거야? 한심하다, 진짜. 지금 경쟁자들은 문제 하나라도 더 풀고 있을 걸? 새해가 별거냐? 넌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거야. 그저 놀고 싶고 좋아하는 아이돌 보고 싶어서 그러고 있는 거잖아.”


   “현수야, 그만 해라.”


   엄마 옆에 앉아 있던 아빠가 갑자기 끼어든다. 아빠는 항상 이런 식이다. 중요한 집안일 조차 한 마디 왈가왈부 하는 일 없는 사람이 자신에게 거슬리는 일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이렇게 무게를 잡는다. 짜증이 난다.


   “우리 집이 이러니까 계속 가난한 거야. 진짜 거지 같아. 공부 좀 하겠다는데 도와주는 인간이 하나 없어. 나 장학금 끊기면 내줄 돈 있어? 방과 후 학습비는? 심화반에서 달마다 내는 돈은? 없지? 그러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하게 방해나 하지 말라고 좀! TV 볼륨도 좀 줄이고! 아 짜증나 진짜.”


   “저게, 저게! 이년아 그게 부모 앞에서 할 소리야? 그리고 불평하고 싶으면 능력 없는 네 아빠한테만 해. 연말에도 10시까지 식당에서 뼈빠지게 일하면서 집안 건사하는 엄마한테 그러지 말고. 그리고 엄마마저 식당에서 일 안 했으면 너네 교복이랑 수학여행비, 신발이랑 옷, 생리대 이런 거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현수 너 요새 엄마가 가만히 있으니까 점점 도를 넘어? 공부 좀 하는 게 벼슬이야? 공부도 좋지만 그 전에 사람이 돼라, 사람이!”


   쾅. 맨날 저 레퍼토리다. 

   <공부만 잘하면 뭐하냐? 사람이 인성이 되어 있어야지, 인성이.>

   인성이 밥 먹여주나? 인성이 나 대신 공부해서 1등 만들어주나? 난 도무지 부모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인사성 밝고 엄마 잘 도와준다며 동생을 칭찬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관없다. 결국 나중에 인정 받고 그들이 아쉬운 소리를 할 사람은 결국 나니까.






   나는 평소에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남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왜냐고? 나의 진솔한 생각을 알게 되면 그들은 분명 날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옳든 옳지 않든 상관없이, 비판 아닌 비난을 할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는 걸 싫어한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보다는 의도적인 외면으로써 현실에서 도피하는 게 훨씬 편안하기 때문이다. 삶은 반쯤 환각 상태에서 살아야만 살아지는 것이다. 미쳐버린 사람들은 어쩌면 현실을 너무 명확하게 자각했기 때문에 돌아버리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 마음과 생각을 툭 터놓고 이야기 한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를 알게 된 후, 19년 만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했다. 그녀와 이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베스 하먼,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모든 것이 명확한데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묻고 또 묻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 답답함을 풀 수도, 그들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할 수도 없다. 때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니까.



   <퀸스 갬빗>의 베스 하먼도 마찬가지의 경험을 한다. 머릿속에 이미 체스판이 그려져 있고 몇 번 눈알을 굴리면 5수 앞의 상황도 단 몇 초면 예측 가능하다. 그런데 앞에 있는 사람은 그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단순히 실수를 한 건지, 최악의 수를 둔다. 패배하고도 여전히 이유를 몰라 아리송한 그에게 베스는 “그렇지 않아. 보기보다 강한 수야. 잘 봐. 나이트가 잡고 폰이 위로 행마, 폰이 안 움직이면 비숍은 꼼짝할 수 없어. 그렇게 되면 다른 폰이 잡히는 거야”라며 체스판 위에서 직접 기물을 움직이면서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는 “돌겠다, 정말. 폰이 움직이고 나이트가 교환하면 체크야. 아직도 모르겠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설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두 번의 가르침 끝에 그도 겨우 이해한 듯 하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이성의 문제가 아닌 감정의 문제로 전환된다. 기분이 나빠진 남자는 “난 그렇게 빨리 알지는 못해. 넌 내게 너무 벅차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벗어난다.


   베스는 남자의 좌절감을 분명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내가 매번 그러하듯이 말이다. 우리처럼 타고난 머리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모르겠다’는 어두컴컴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난 그녀 또한 나처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척’ 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에 완전한 이해는 없다. 누군가가 자신 아닌 타인을 이해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스티브 잡스는 소원했다. 소크라테스와 단 한 번이라도 점심 식사를 할 수 있기를,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모든 걸 포기하겠다고도 말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열망한다. 베스 하먼과 단 한 번이라도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다면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것들이라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그만큼 나와 동류의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소망과 달리 현실은 냉혹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법 없이 뻣뻣한 태도로 고답하게 흘러간다. 나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오늘도 여전히 나는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모든 생각들을 단 1%도 알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부모는 앞으로도 내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헛소리를 지껄일 것이고, 세상은 <올바름>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두고 표리부동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의 손아귀를 거쳐 계속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나의 진실됨을 세상에 온전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 이상, 가지고 태어난 외모와 지능으로 승승장구 하며 살아갈 것이다.



   모두가 주연 자리를 꿰차고 싶어 하지만 주인공은 누구나 될 수 없다. 세상의 주인공은 정해져 있다.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은 조연으로, 때론 단역으로 주인공의 삶에 잠깐씩 등장했다 사라질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변주하여 <내 인생에서 만큼은 내가 주인공>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주인공이 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인생을 살아갈 수 있고 버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과 괴로움에 잠식 당할 뿐이다.


   물론 나는 예외다. 나는 온갖 버프를 받고 주인공이 되고자 태어난 사람이니까. 재수없어도 어쩔 수 없다. 역사상 위대한 천재들 모두 조금씩은 소시오패스적이고 이기적이며 사회성이 결여된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나 또한 미래의 위대한 성공 스토리를 위해 지금 고난을 겪고 있을 뿐이다. 살면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들은 그저 나 같은 주인공을 서포트 하기 위한 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가진 능력과 주변의 무한한 서포트로 난 분명 살면서 성공가도를 달릴 것이고, 나의 이야기는 모두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베스 하먼의 이야기처럼, 영원토록.



매거진의 이전글 원석을 어떻게 가공할 지 네게 달렸어,<귀를 기울이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