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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비탈 Sep 05. 2023

어느 자영업자의 하루

<시공간>


샴푸를 한다

린스를 한다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진다

오늘도 거울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남은 희망을 빗듯이 머리를 빗는다

침대에 앉아 밤새 머리맡에 놓았던 묵주를 들고 성호를 긋는다

계단을 내려간다


자동문을 열고

커다란 통유리창 안으로 들어간다

햇살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두었다

한낮의 정적 속에 비명소리를 듣는다

주위를 둘러본다

조용한 실내

사람을 기다린다

하루 종일 벽화처럼 앉아 사람을 기다린다


14시 50분,

사람들이 나를 잊을까 무섭다

떠내려가는 하루를 꼭 붙들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실내

누군가 나를 칼로 찌르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보지 못하고 나의 비명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나는 숨을 죽이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세상을 도청하고 있다

무섭다 세상이 나를 잊을까 무섭다                         

 




 


8년 전쯤, 잠실에서 침대 전문점을 한 적이 있었다.

한 달 월세는 660만 원, 관리비와 전기세까지 합하면 700만 원이 넘는 액수였다.

365일 휴일도 없이, 한 달 꼬박 일해서 건물주에게 입금하고 나면 내 노동력의 대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건물주를 위해 일한 것이었다.

이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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