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일상이 된다는 것
'여행'이란 단어만큼 우리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있을까. 굳이 영화 속에서 보던 파리의 거리가 아니어도 여행이라는 것은 일상이 아니라는 것 자체로 우리에게 특별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우리는 해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여행이 연장선이 될 것이라는 착각과 함께 외국에서의 일상을 꿈꾸기도 한다. 바로 내가 그러했다. 그러나 그 꿈에서 깨기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2016년, 1년이라는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졸업장을 받은 후 it엔지니어로서 도쿄로 돌아왔다. 그런데 2016년 나에게 주어졌던 1년 간의 유학생활과 사회인으로서 내디딘 도쿄의 생활은 무언가가 달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외국 생활,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의 문화 차이 등 내가 1년간 지냈던 유학생활과 취업은 많이 달랐다. 난 정녕 취업을 원했던 걸까, 막연한 외국 생활을 원했던 걸까.
취업은 이 낯선 땅을 '일상'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매일매일이 여행 같을 거야라는 기대는 때론 그냥 지루한 매일매일만을 남기기도 한다. 나에게 블로그를 통해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는 취업준비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일본에서 살고 싶어서요', '일본 여행을 많이 떠나서 전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각오로 일본 취업을 준비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실패하여 돌아간다. 물론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한국에 비해 비교적 큰 보수를 받고 멋지게 롯폰기에서 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만 뚜렷하지 않은 각오를 하고 선택한 회사는 꽤 높은 비율로 실패의 쓴 맛을 준다.
실패와 성공을 나누는 기준은 제각기라고는 하지만 기약 없는 생활을 해야 하는 해외 취업은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년, 2년과 같은 일정한 기간 동안 우리에게 해외생활의 경험도 안겨주는 워킹 홀리데이, 유학이 아니라 왜 '취업'이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나도 오랜 시간을 들였고, 내게 조언을 구하는 많은 취업준비생들 또한 많은 시간을 들였으면 한다.
무엇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어 계기는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일본 취업을 마음먹었다면 그 계기를 모든 면접에서 가장 첫 질문으로 듣게 될 것이고 취업을 한 후로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게 될 질문이다. 확고한 마음가짐은 비단 면접 대비를 넘어서서 외국에서 생활을 함에 있어 많은 고난이 닥쳐와도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면접에서도 일본에서의 생활에 있어서도 이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할 수 있도록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난 왜 일본이어야 했을까.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일본 도쿄의 손꼽히는 명문 자매교로 교환학생을 오게 되었다. 어학연수와는 다르게 교환학생으로 오면 일본어가 주된 학업이 아닌 자신의 전공을 공부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일본의 정보통신을 공부하게 되었다.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면, 모교 같은 경우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는 나의 전공 강의실에는 개인별로 PC가 마련되어 있었고, 수업도 굉장히 탄탄하고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교수님들의 질 높은 강의를 아주 타이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수업을 위한 자료도 풍부하게 제공되었고 이론 시간만큼 실습시간도 거의 동일하게 주어져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선배들은 실제로 N사, K사 등 유명한 한국의 it 기업으로 취업을 하곤 하였다. 그에 비해 일본에서 배웠던 전공수업은 모교에서 1, 2학년 때 스쳐가며 배우는 이론을 한 학기에 걸쳐 꼼꼼하게 배우며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한국은 몸소 부딪히며 배우면서 기술을 몸에 익히는 느낌이 강하다면, 일본의 대학교에서 느낀 수업은 꼼꼼히 자세하게 배울 수 있었다. 실제로 알고리즘과 데이터베이스 이론에 대해 한국과 일본에서 같은 이름의 수업을 비교하여 들어본 적 있다. 일본에서는 알고리즘의 데이터를 판서를 통해 하나하나 토론해가며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한국에서의 수업은 예문을 코딩해가며 몸소 익히는 느낌의 수업이었다. 물론 교수님에 따라, 학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일본의 소프트웨어가 한국에 비해서 늦게 발전할 수 있지만,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은 탄탄하게 다져져 있을 것이라는 배움을 얻었다. 그렇게 일본의 it업계와 한국의 it업계 중 나의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나와 같은 it엔지니어들은 it강국인 한국에서 왜 굳이 일본으로의 취업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되묻는데도 꽤나 긴 시간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일본 회사에서도 한국의 it업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데에 비해 일본은 비교적 느린 성장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왜 일본으로 오고 싶어 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우리에게 던지기 때문이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it업계란, 한국보다 개인정보 등에 대한 과제로 비교적 아날로그적인 일본 사회에 있어 늦은 성장 속도를 보인다.
나는 일본이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버리지 못해 it의 성장이 느리다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할 수 있는 분야의 폭이 넓다는 것처럼 들려 흥미를 느꼈다. 실제로 일본은 현금위주의 경제활동으로 애플 페이 등이 크게 사용되지 않을 것 같았지만, 현재 애플 페이를 비롯한 NFC 기술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어 짧은 기간 동안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이렇듯, 조금은 늦은듯하지만 그만큼 시도해볼 만한 소스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it강국은 한국인데 왜 일본으로 가려해?”
나의 답은 일본의 기반과 한국의 기술력이 합쳐진다면 보다 재밌는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일본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복리후생의 차이가 심하지 않아 중소기업에서도 독자적인 엔지니어를 폭넓게 고용하고 있다는 점은 부담 없이 꿈을 펼치기에 좋다고 생각된다. 작게는 식자재를 유통하는 회사에서도 엔지니어를 채용하기 때문에 엔지니어로서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업계의 선택지가 넓다는 점과 그에 따라 지식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은 엔지니어로서 그리고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충분히 경험할만한 시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자신 있게 일본의 it업계에서 일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단, 세계의 it를 이끄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삼성이 있는 한국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it? '왜 일본의 it업계여야 하나', 근본적으로 '왜 일본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목표는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기도 실패의 아픔을 안기기도 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도 함께 전해주고 싶다. 몇 년 후 '일본의 it업계에서 일하길 잘했다'라는 이야기를 고민 없이 말할 수 있도록, 일본이어야 하는 이유, 특히 일본의 it업계여야 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