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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 Aug 23. 2020

완벽하던 나의 첫 회사, 반년만에 떠나다

나에게 꼭 맞는 일본 회사란 있을까

가장 위험한 흑백논리


올해도 어김없이 흔히 '블랙 기업 리스트'라고 불리는 일본의 기업 순위가 카더라 통신으로 떠돌기 시작했다. 매년 일본에는 '블랙 기업 리스트' 혹은 '화이트 기업 리스트'라는 리스트가 나온다. 허나 그 기업 리스트를 보면 유명한 대기업,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입사를 원하는 기업이 많아 실제 일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일본 취업시장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한국에도 많은 '일본 it취업 준비생들의 모임'과도 같은 일본 취업 준비생들의 커뮤니티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재작년 엔지니어 신졸 채용을 진행하며 커뮤니티 몇 곳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 커뮤니티 안에서도 이름바 '일본의 블랙 기업 리스트'는 회사를 선택함에 있어서 적지 않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싶었다.


'한 회사에서 3년은 다녀야 좋다던데...'

  우리는 조금 더 내게 맞는 회사를 찾는 과정으로 약 1년 동안 '취업 활동'이라는 구직기간을 갖는다. 그리고 흔히 한 회사를 다녔다고 말하기에 좋다고 불리는 3년 혹은 5년이라는 기간을 잡고 스스로 기간의 제약을 걸어두며 회사를 찾는 과정에서 부담감을 가진다. 그렇다 보니 우리의 이력서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회사를 찾기에 물론 '블랙기업'이라는 자극적인 주제에 눈길이 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말 일본에 있는 수천, 수만 가지의 회사를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 실제로 일본에 블랙기업과 화이트 기업 리스트는 존재하는 걸까?


'대기업 R사에 엔지니어로 들어가면 자기 자리에서 안 울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블랙기업으로 꼽힌대'


2018년 9월경, 나는 첫 회사에서 회사와의 신뢰, 성장 가능성에 대한 고민에 빠져 반년만에 이직을 준비하여 8개월 만에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이직을 희망하던 곳은 R 사였고 실제로 이직을 준비하며 몇 번 들었던 R사에 대한 평판이다. R사는 매년 흔히 말하는 블랙기업 리스트에 꼽히는 회사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즐거운 환경에서 탄력적으로 근무할 수 있고 성장하기 좋으며 일단 복리후생이 굉장히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럼 내가 들어본 블랙기업들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되었던 것이었을까.


완벽하던 나의 첫 회사, 반년만에 떠나다

나는 두 번의 2017년부터 지금까지 약 3년간 2번의 구직활동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해왔다. 어찌 보면 현실적으로 변하였고 어찌 보면 성장하였다. 신입사원으로 2018년 4월 일본으로 건너오기 전의 나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직업을 선택하는 나의 기준은 적당한 자유와 적당한 급여,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나의 '성장'이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당시의 나는 나의 꿈을 물어보면 티 없이 맑게 '사장이요'라고 답하였다. 그만큼 만들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대학생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없어도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새로운 세상이 뚝딱 만들어지는 it업계에 이름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내 아이디어를 얼마든지 들어줄 벤처기업으로의 입사를 지망했다. 실제로 나는 일본의 대기업의 입사를 포기하고 단순하게 내 목소리를 잘 들어줄 것만 같은 뜨거운 벤처기업으로 입사를 결정하였다. 바로 나의 첫 회사였다.


나의 첫 회사는 입사 전부터 열정이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너무 재밌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 일본에서 하고 싶은 서비스에 대한 대학생의 귀여운 아이디어에 무려 사업부장님이 귀 기울여주었다. 대답은 '재미있겠다. 같이 하자!'였다. 뜨거운 열정뿐이 내세울 것이 없던 내게 사업부장님의 그 한 마디가 그렇게도 반짝였다. 그리고 반년간의 회사생활을 거치며 내 가치관이 바뀌어갔다. 실제로 벤처기업은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만큼 사업이 실패하였을 때의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도전하기 힘든 환경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을 하며 느끼는 나의 보람은 누군가를 서포트할 때 가장 컸고, 나의 꿈도 도전과 성장에 대한 나의 인식 또한 바뀌어갔다. 한 사업을 총괄하는 사장이 되고 싶은 내가 회사 생활을 계속하며 서포터로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정반대의 포지션으로 목표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사장이 아닌, 반짝여줄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채용담당자가 되고 싶어 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들의 다양한 언어, 기술력, 업무방식을 알고 싶었다. 시야를 넓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회사는 하나의 서비스, 사용하는 언어도 하나였고 나는 보다 안정적이고 큰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구직활동이 시작되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지 반년만의 일이었다.


첫 회사를 고를 때, 나는 '도전', '창업'을 기준으로 회사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년 후, 나는 '안정', '큰 규모', '복리후생'을 중요시하며 회사를 고르고 있었다. 나의 목표가 회사를 고르는 기준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것이다. 아마 2016년 첫 회사를 고르던 나에게는 안정적인 기업은 되려 답답하고 딱딱하게 느껴져 적응하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가치관이 변하며 이직을 하게 되었지만 그때의 나에게 최고의 회사는 나의 첫 회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직을 준비하던 나에게는 반대로 나의 첫 회사가 나의 꿈을 펼치기에 한계가 있는 공간으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최고의 기업은 그 시기의 나의 가치관으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나의 니즈로 나만의 화이트리스트를


 우리는 꽤 자극적인 것일수록 본능적으로 흥미를 느낀다.  인 서울 대학 서열 같은 줄 세우기 말이다. 그러나 그 줄을 우리 스스로 세워보는 발상은 하기 어려웠다. 남이 평가한 것을 손에 넣은들, 우리한테 맞는지 맞지 않는지 모르는 것이듯 일본의 기업 리스트 또한 마찬가지다. 입맛에 따라 맛집 리스트가 다르고, 사람마다 음악 재생목록이 다르듯 나의 가치관에 따라 회사를 골라보자. 그 시간을 취업활동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 급여, 팀 분위기, 성장 속도, 업무량, 잔업시간 등 회사를 고르는 데에는 다양한 기준이 있다. 틀림없이 인터넷에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무장된 '블랙기업', '화이트 기업' 리스트가 존재한다. 나 또한 그 자극적인 소재에 그 기업이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지도 모른 채 마음이 휘둘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어떤 '리스트'보다도 나의 꿈과 목표를 토대로 결정한 나의 '니즈'였다. 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육아에 조금 더 신경 쓸 수 있는 환경인 플렉스타임 제도가 있는 회사가 제일일 것이고, 스킬 향상을 빠르게 이루고 싶은 워커홀릭에게는 잔업시간보다 성장환경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같은 회사일지라도 두 사람 중 어떤 이에게는 '화이트 기업'이, 어떤 이에게는 반대로 '블랙기업'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을 찾는데 흔히 사용되는 구직사이트조차 대략적인 부문들로 점수를 매겨진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실제로 구직사이트 평점이 5점 만점에 3.1점에 그침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 2년 간의 회사 생활 중 단 한 번도 불만을 가져본 적 없을 만큼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야근도 해본 적 없고, 다루어보지 못한 프레임워크와 언어를 다루며 기술적인 성장도 이루어냈다. 다만, 규모가 커진 만큼 예전 회사에 비해 사원들과의 교류는 줄어들었다. 확실히 장단점은 존재하지만 내게 장점이 더욱 많이 느껴지는 회사이다. 즉, 짧게는 한 두 달, 길게는 반년에서 일 년까지의 취업활동 기간을 다양한 팀에서 개인적인 의견이 섞여 매겨진 점수가 아닌 나의 가치관에 따라 회사를 판단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으면 한다.


일본에서 취업비자라는 재류자격을 받아 살아가게 되는 우리에겐 자국민보다 시간의 여유가 적을 수밖에 없다. 퇴사를 한 후 3개월 간 취업을 하지 않으면 자격 박탈의 우려가 있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회사를 고르는 데에 있어 자신만의 뚜렷한 기준을 잊고 움직이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블랙, 화이트 기업 리스트들에 쉽게 현혹되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를 결정하는 출발선상에 선 그 시기의 자신의 꿈은 무엇인지, 어떤 업무환경을 원하며 어떤 규모의 회사를 원하는지 본인만의 기업 리스트를 작성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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