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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M K Jeong Aug 18. 2022

노력하되 원망하지 않는다

행복한 나의 삶 1

15살부터 하루 13시간 이상 노동을 했다. 내 하루 24시간 중에 13시간을 일하고, 5시간을 출퇴근하고, 그리고 남는 시간은 6시간, 자고 먹고 씻고 그리고 독서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10대를 보냈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나는 여전히 노동을 해야 했다. 누구를 원망할 마음이 들지도 않았고, 내 삶을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20대는 아주 잠깐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 대학에 합격해도 학비가 없었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노동하고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니, 성적이 제대로 나올 수 없었고, 당시 노동의 대가라는 것이 너무 낮아서 그렇게 일해도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와 같았다. 한 학기 벌어서 한 학기 공부하고, 휴학하고 다시 돈 벌어서 한 학기 다니고 또 휴학하고.. 그런데 휴학도 2회 이상 할 수 없는 까다로운 시절이었다.


그래서 실력만 있으면 대학을 다닐 수 있는 나라에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하고 싶은 공부를 저렴한 학비와 생활비로 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알바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있는지 주한 대사관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대만을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8개월간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하고, 중국어학원 선생님이 중국어 자소서 한번 고쳐주고, 가까웠던 교수님께 추천서를 받고, 혼자서 유학서류를 준비해서 보내고... 그렇게 대만으로 유학을 갔다.

유학생활 4년 동안 나의 24시간은 3개의 정기적 알바와 3개의 비정기적 알바로 하루 6~8시간, 수업 6시간, 과제 준비 6시간 그리고 남는 시간에 먹고, 자고, 운동하고...


학비는 엄마가 청소일로 1년에 200만 원을 보내주시면, 대만 국가장학금 조금과 함께 학비와 기숙사비로 썼다(*참고로 엄마가 애쓰신 노동의 대가는 후일에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살아계신 동안 정기적으로 갚아드렸다). 나머지 교재비와 생활비는 알바를 통해서 벌어야 했다. 유학 1년 차 때는 언어 문제로 알바를 제대로 못하고, 기숙사에서 소일거리를 했다. 한 달에 10만 원쯤 벌었는데, 하루에 물과 샌드위치 2개 정도 사 먹을 수 있었다. 3개월 후에 수면부족과 영양실조로 교실 바닥에 쓰러졌고, 학과 교수님들과 교관들이 난리가 났었다. 외국학생이 영양실조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총장님께 전해지면서.... 학교에서 알바를 더할 수 있었고, 한 달에 20만 원쯤 벌었다. 가끔 교수님, 교관들 그리고 조교들이 점심을 사주시기도 했다. 이분들에게는 다 갚지 못해 마음의 빚이 남아있다.


나의 젊은 날이 어려웠다고 할 수도 있지만, 누구도 원망해본 적이 없다. 원망할 시간에 단어 하나 책 한 줄 더 읽어야 했다. 가끔 부모님과 형제들이 보고 싶어 연락하면, 엄마의 한마디가 전화기 너머로 날아들었다. “네가 지금 향수병 같은 것.. 잘하는 짓이다... 그럴 시간 있으면 단어 하나 책 한 줄 더 읽어라!!! 전화하지 마.. 뚝” 그분 덕분에 나는 힘들지 않았고, 행복했다.


일하고, 공부하고, 노력할 수 있는 삶이 너무 좋았다. 누구와 비교하거나 누구를 원망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만 목표였고, 수면은 나이 먹어서도 충분히 잘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서 여전히 책 읽는 을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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