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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y Feb 14. 2020

날카로운 펜 촉을 모두에게 들이밀어라

저널리즘 토크쇼 J 를 중심으로

세월호 보도 참사는 방향성을 잃은 한국 언론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속보 경쟁에만 바빴던 언론의 한심한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던 국민은 줄줄이 소시지처럼 엮여 나온 그들의 추악한 면모에 참았던 분노를 터뜨렸다. 그때를 기점으로 기자는 기사로 밥벌이하는 기레기로 추락했고, 아나운서는 아나테이너로 전락했으며, 언론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2018년 미국 퓨 리서치센터에서 실시한 뉴스 정확도 설문 조사에서 최하위를 차지한 결과는 지하로 처박힌 한국 언론의 위치를 다시금 느끼게 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언론은 한국 언론 위상 재탈환을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했다. 그중 자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고, 이 과정에서 KBS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가 탄생했다.



언론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다며 자사 KBS도 비판하는 겁대가리 상실한 미디어 비평 토크쇼 <저널리즘 토크쇼 J>(이하 저리톡). 전반적인 포맷은 JTBC <썰전>과 비슷하지만,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다루는 비평 프로그램이라는 포맷은 한국 방송에서 난생처음 보는 형태이다. 토크쇼 패널 역시 전문가와 일반인이 적절히 섞여 있어 전문가들만 우르르 나와 생동감 없는 얘기를 공허하게 늘어놓는 시사 프로그램과 격이 다르다. 프로그램이 다루는 내용도 굉장히 흥미롭다. 최근 방송된 71회만 하더라도 언론사 컨퍼런스 및 언론 홍보 대행의 실체에 대해 다루면서 변형된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적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재미와 교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그저 오락프로그램의 하나로 생각한다면,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는 지금의 <썰전>보다 훨씬 재밌고 유익하다. 하지만 비평 프로그램으로서는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이다. 특히, 균형을 잃은 평론을 양산하는 모습은 시소 한쪽에만 추를 잔뜩 쌓아 올린 채 균형을 맞추겠다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같다. 지금 <저리톡>은 모든 언론의 곪은 부위를 모조리 도려내고자 하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모든 언론의 썩어 빠진 부위를 도려내는 데 앞장서려면 당연히 수신료 값 못하는 자사 KBS도 비판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거침없이 자사를 공격하고 반성하는 듯한 모습은 깨어있는 20대 청년의 모습과 같았다. 하지만 모양새만 그럴싸했지 사실상 자사 KBS에 대해서는 여전히 힘없는 물 주먹만 날릴 뿐이었다. 다른 회차와 비교하면, 63~64화에 걸쳐 보여준 KBS 자사 비평의 강도는 고작 고양이가 살짝 할퀴는 정도에 불과했다. 63화는 유시민 이사장의 발언으로 촉발된 KBS 인터뷰 왜곡 논란에 대해 다뤘지만, 정작 중요한 검찰발 보도, 단독 경쟁에 대한 이슈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화장실 가서 용변보다 끊긴 느낌을 주었던 63화가 논란이 되자 64화는 KBS 정연주 전 사장을 데려와 썩어 빠진 취재 관행에 대해 고찰하고 비판했다. 하지만 여전히 KBS의 오래된 숙제인 무분별 단독, 속보 경쟁에 대한 이슈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59화 기생 언론 편에서는 <인사이트>의 영업이익, 뉴스 생산 과정 및 자사 윤리 강령과 실근무자 인터뷰 등을 보여주며 기생 언론의 출현 배경 및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심지어 <인사이트>는 노출성과 영향력을 권력으로 이용하여 악의적 보도를 일삼는다는 어조가 센 비평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자사에는 촉 없는 펜을 들이대지만, 타사에는 첨예한 칼을 들이댄다. 하지만 자사에만 유독 순한 맛 비평을 던지는 <저리톡>의 모습은 중학생 꼬마가 제 부모에게 반항하는 꼴로 보일 뿐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자사의 문제부터 첨예하고 구체적으로 비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저리톡>은 유독 신문 매체만 비판하면서 균형성을 잃은 비평을 고수한다. 물론, 조선일보가 주요 언론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저리톡>은 저널리즘 비평 프로그램이지 신문 비평 프로그램은 아니지 않은가. 47회에서 뉴스의 생산 과정 및 개입되는 자본에 대해 논하면서 신문사의 유료부수 조작이나 발행 부수 과대 발행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하지만 뉴스를 다루는 주체는 신문사뿐 아니라 방송사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요새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 때문에 신문을 보는 사람보다 영상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이 더 많다. 자본 유치를 위해 기업과 결탁하는 방송 뉴스에 대한 첨예한 비판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저리톡>의 불균형한 언론 비평은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격이다. 대중에게는 그놈이 그놈일 뿐인데, 마치 방송 뉴스가 신문 뉴스보다 낫다는 황당한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듯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그래도 공영방송에서 오랜만에 수신료 값하는 시사 프로그램이 나와 상당히 반갑다. 하지만 미디어 비평이라는 본질에 맞게끔 모든 미디어를 균형 있게 비평해주기를 바란다. 경고랍시고 자사 KBS에는 촉 없는 펜을 들이밀고, 방송 뉴스에는 뭉툭한 펜 촉을 들이밀다가 갑자기 예리한 칼로 신문의 목을 노리는 태도는 그저 한 편의 코미디일 뿐이다. 그저 그런 오락프로그램이 아니라 국내 유일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어설픈 비평 흉내는 그만하고, 날카로운 펜 촉을 모든 언론에 공평하게 들이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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