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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y Nov 28. 2019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좋은 드라마인 것은 아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시즌 1(13 reasons why) 중심으로

‘잔인한 표현이 지어낸 충격 때문에 잔혹한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가려졌다’ 최근 종영한 OCN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에 대한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의 코멘트이다. 스릴러 장르에 지극히 충실한 <타인은 지옥이다>는 손에 꼽히는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칼로 찌르고, 고문하고, 숨통을 끊는 역겨운 과정을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연출했다고 하여, 문제의 화제작이라 불리기도 한다. 연기 구멍 없는 출연진 라인업과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연출은 ‘웰메이드’ 라는 타이틀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지만 '좋은 드라마'라는 왕관을 쓸 자격은 없다.


 


2017년 상반기, 가장 트윗이 많이 된 화제의 메가 히트작 넷플릭스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 역시 웰메이드 드라마인 동시에 문제의 화제작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본 드라마는 넷플릭스(Netflix)에 공개된 이후 끊임없이 청소년의 자살 조장 논란에 시달려 왔다. 심지어 지난 29일 미국 국립 보건원은 해당 드라마로 인해 청소년 자살률이 무려 30%나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들이밀며, 드라마를 또 한 번 신랄히 비판했다. 물론, 모든 자살한 청소년들이 본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하여, 연구의 신빙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가 불필요하게 노골적인 연출로 보는 시청자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한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드라마는 자살한 해나 베이커가 남긴 13개의 테이프를 통해 그녀가 죽은 이유를 역추적하는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 특히, 고등학생 해나가 겪은 ‘왕따, 성폭행, 언어폭력’ 등을 그녀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연출은 피해자의 고통을 직접 겪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결이 다른 여러 사건이 한 데 얽혀 청소년이 직면한 암울한 현실을 표현해내는 연출은 역시 웰메이드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게 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리얼리즘을 구현한다는 핑계를 대며, 불필요할 정도로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마저 예술적 허용이라 포장한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장면은 시즌 1 해나의 자살 장면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버티지 못한 해나는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주변을 정리한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후, 그녀는 욕조에 들어가 손목을 천천히 그어내고, 욕조 물은 점차 빨갛게 물이 든다. 해당 시퀀스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자살 장면을 자살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길고 상세하게 보여주는 연출은 과하게 자극적이고 불쾌했다. 굳이 자살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제작자는 리얼리즘을 살리기 위한 연출적 장치라고 말하지만, 그저 친절한 자살 지침서 한 권을 읽은 기분이었다.


 


물론, 여성에게만 정조관념을 종용하는 불합리한 사회를 구체적 사건을 나열하며 비판하는 연출은 상당히 좋았다. 뜬구름잡기식의 서사 전개가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들이 제시되면서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했다. 하지만 성폭행 서사를 다루는 연출은 불필요하게 자극적이었다. 특히,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제시카를 성폭행하는 장면은 자극적임을 넘어 불쾌했다. 정황을 묘사하는 정도로만 그쳐도 될 것을 굳이 많은 컷을 사용해서 성폭행하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 것은 역겨울 정도였다.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자극적으로 연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해자의 고통이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강제로 자행되는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연출은 변태 포르노물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성범죄라 해서 무조건 선정적으로 연출하는 것은 피해자의 상처를 후벼 파기 밖에 더하겠는가.




 


덧붙여, 대체 누구를 위한 드라마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는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로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청소년을 드라마 주요 시청층으로 삼고 있으며,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제작자와 배우들은 드라마를 통해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로가 되어주기에는 너무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다. 드라마가 단지 청소년들이 직면한 우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충실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청소년을 소재로 한 선정적인 오락물이기 때문일까. 청소년의 고통에 공감해달라 호소하는 것인가. 자극적인 콘텐츠 위에 청소년이라는 소스를 끼얹은 것뿐인가.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연출로 말도 많지만,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잘 만든 드라마이다. 서사 구조도 짜임새 있고, 연출도 섬세하다. 연기 또한 지적할 부분이 없으며, 다루고 있는 주제 또한 깊이가 있다. 소위 말하는 하이틴 드라마와는 ‘급’ 이 다르다. 하지만 좋은 드라마는 아니다.




‘Hot Trash!’  미국 평론가 Alise Morales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청소년 사회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는 점과 몰입도 높은 연출은 이 드라마를 ‘핫’ 하게 했다. 하지만 자살, 왕따, 성폭행과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자극적인 유희 거리 인양 소비한 점은 이 드라마를 ‘쓰레기’로 만든다. 웰메이드 드라마일지언정 좋은 드라마는 아니다. 그저 똑똑한 각본과 연출로 포장한 Hot trash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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