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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y Dec 02. 2019

당신은 어떤 어른입니까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를 중심으로


뭉크 <사춘기>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뭉크의 대표작 <사춘기>를 본 적 있는가? 한 소녀가 알몸인 채로 침대 한편에 앉아있다. 그녀의 커다란 두 눈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만, 앙상하게 마른 두 팔은 부끄러운 듯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왜인지 불안하고 초조하며 두려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는 완전히 성숙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마냥 어려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그녀를 우리는 ‘청소년’ 이라 부른다.




여기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드라마가 있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The end of the fucking world)>는 친부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엘리사와 그녀를 따라나서는 사이코패스 소년 제임스의 이야기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은 실수로 저지른 살인 때문에 경찰에게 쫓기는 최악의 상황에서 서로만을 믿고 의지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성적인 ‘어른’들은 제임스와 엘리사를 ‘문제아’라고 낙인찍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합당한 처벌’ 뿐이라 말한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에는 관심 없어. 또 사람을 죽이기 전에 그들을 잡는 게 중요하지.” 엘리사와 제임스를 쫓는 경찰은 이렇게 말한다. 소위 ‘어른’이라는 작자들은 이성적인 척 ‘결과’ 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든다. ‘왜?’ 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들의 눈에 비친 엘리사와 제임스는 가출해서 살인을 저지른 ‘철없는 10대 문제아’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부모 역시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아이들이 이유 없이 반항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제임스와 엘리사의 일탈은 ‘문제아들의 한낱 기분 전환’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제임스는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라 생각하지만, 그저 따뜻한 애정이 필요한 소년일 뿐이었다. 하지만 제임스의 아버지는 애정을 갈구하는 아들을 알아채지 못했다. 엘리사는 세상에 불만이 많은 반항 소녀처럼 보이지만, 단지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소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구원 요청을 외면할 뿐이었다. 제임스의 아버지와 엘리사의 어머니는 ‘다 큰 아이’라며 그들을 방관했다. 이미 가출하기 전부터 두 사람은 낭떠러지의 끝에 서 있었다. 절대적인 내 편과도 같았던 ‘가족’이 그들을 절벽 끝으로 몰아간 셈이다. 그들의 ‘일탈 행위’는 ‘살기 위한 발악’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 컸으니까 신중하게 행동했어야지.” 어른들은 여전히 엘리사와 제임스의 ‘일탈 행위’에 대해 꾸짖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 컸다고 말하기에는 아직은 어린 ‘청소년’일 뿐이다. 뭉크의 <사춘기> 속 소녀와 같이 몸뚱아리는 어른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에 발발 떠는 새끼 고양이와도 같다. 털을 바짝 세운 채 ‘빌어먹을 세상’이라 하악질을 하며 이리저리 방황한다. 우리는 이 시기를 ‘사춘기’라 쓰고, ‘중 2병’ 이라 읽는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 있는 청소년. 그들의 방황기를 단숨에 잠재울 마법의 묘약 따위는 없다. 그러나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은 힘들어하는 그들에게 작지만 힘 있는 위로가 된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우리 곁에는 청소년에게 회초리만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은가. 방황하는 아이들을 ‘글러 먹은 애들’ 이라 단정 짓고 포기해버리는 어른들이 더 많지 않은가.




아프리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한 아이가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려면 마을의 모든 어른들이 발 벗고 나서서 그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나 몸만 거대해졌지,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멋도 모르고 남을 상처 입히는 미성숙한 어린애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제임스와 엘리사는 우리에게 구원요청을 보내고 있다. 당신은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어른이 될 것인가. 발악하고 있는 그들을 구경하는 어른이 될 것인가. 당신은 어떤 어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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