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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y Dec 04. 2019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닙니다

영화 '변신' (2019)을 중심으로

맛있어 보이는 메뉴판 사진에 이끌려 어느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들어왔다고 가정해보자. 에피타이저로 나온 스프는 감칠맛이 나고, 본식으로 나온 스파게티는 생각보다 훨씬 맛있다. 그런데 후식이랍시고 ‘낙지죽’을 내왔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디저트가 낙지죽이라면,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뜬금없는 메뉴의 등장에 황당할 것이다. 영화 <변신>이 이러하다. 나쁘지 않은 스타트로, 중반부까지는 스릴감과 공포감이 넘치는 상당히 매력적인 영화이다. 하지만 후반부부터 몰아치는 신파는 영화가 쌓아온 매력도를 단숨에 무너뜨린다.


관객 수 180만명을 넘어서며 올여름 최고의 공포영화 타이틀을 얻은 <변신>. 악령에 빙의된 사람을 소재로 하는 일반적인 오컬트 영화와는 달리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악마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개봉 전부터 기대작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영화는 기껏 들여 쌓아온 공든 탑을 자기 손으로 무너뜨린다.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공포영화로서는 실패했다.


영화는 사제 중수(배성우)가 소녀의 몸에 깃든 악마를 쫓아내고자 구마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은 영화 <검은사제들>(2015)과 드라마 <손 the guest >(2018)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오르게 한다. 여느 오컬트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상함이기에 아쉽기도 했지만, 압도하는 연출에 식상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사운드와 빛을 적절히 사용한 연출은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중반부는 기대 이상이다. 전형적인 오컬트 장르의 법칙을 따르고 있어 지루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플롯이 생각보다 흥미롭다. 악령은 강구(성동일)네 가족들의 모습을 한 채 등장하여 공포감을 유발하고, 가족 간의 불신을 조장한다. 엑소시즘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일반적인 오컬트물과는 달리, 가족 드라마의 요소가 더해져 신선하다. 게다가 1인 2역을 훌륭히 소화해 낸 배우들의 명품 연기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건 엄마 명주 역을 연기한 장영남이다. 반찬 투정 부리는 아들을 노려보며 걸신들린 듯 음식을 먹는 모습은 악마 그 자체였다. 생각보다 훨씬 잘 차려진 음식에 감동은 두 배로 커졌다.


그러나 영화는 맛있는 본식을 먹어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는 관객들에게 뜬금없이 ‘신파’라는 찬물을 끼얹는다. 강구네 가족이 중수를 집으로 부르면서 영화는 멀쩡한 서사에 억지스럽게 가족애를 끼워 넣는다. 깜박이도 켜지 않고 훅 들어온 신파에 관객들은 당황스럽다. 결말 부분에서는 급기야 중수와 강구가 형, 동생을 찾으며 눈물을 짜내기 시작한다. 영화는 철저하게 관객들을 따돌리며 나 홀로 극을 전개한다. 두 배우의 연기가 고조되고 영화는 극에 달하지만 공감되지 않는 감정선에 관객들은 황당할 뿐이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 ‘이게 뭐야’ 라고 대놓고 실망하는 사람이 수두룩할 정도로 후반부는 큰 아쉬움을 남긴다.


<변신>은 전형적인 용두사미형 영화이다. 오컬트 장르에 드라마를 끼얹어 신선함을 주었지만, 장르 밸런스 조절에 실패했다. 우리가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오싹한 감정을 즐기기 위해서이지, 교훈을 얻고 눈물을 쏟으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변신>이 잘 만든 공포영화였다면, 공포라는 장르적 특징을 서사 전반에 녹여내면서, 드라마적 요소는 조미료 역할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부까지 드라마를 조금씩 뿌려 넣다가 후반부에 왕창 들이붓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다. 넘칠 정도로 과한 드라마적 요소 때문에 영화는 ‘신파극’으로 ‘변신’했다.


주객전도라는 성어가 있다. 손님이 주인 노릇을 하며 역할이 바뀌었음을 지적할 때 쓰이는 말이다. 영화 <변신>은 주객이 전도된 영화이다. 중반부까지는 잘 만든 공포영화였지만, 후반부는 주객이 전도되어, 억지 눈물 짜내기식의 신파만을 보여줄 뿐이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소름 끼치는 공포를 기대하고 무방비로 상영관에 들어갔다가는 신파의 무차별 폭격에 K.O 되기 일쑤이다.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기는 쉽다라는 말처럼 힘들게 쌓은 공포영화의 서사가 감동 드라마의 난입으로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변신>이 아쉬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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