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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앨리 Sep 14. 2023

발톱을 숨겨라

홍콩에서 오신 무서운 할머니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여름방학이 며칠 안 남은 어느 날, 아이들로 빽빽한 교실엔 선풍기도 없이 그저 책받침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던 때였다. 학교에 괴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홍콩할매라는 한 할머니가 한국에 상륙했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인즉슨, 대한항공을 타고 홍콩으로 가려던 할머니가 불의의 추락사고로 그만 그 자리에서 사망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던 할머니의 고양이와 몸이 합쳐지며 반은 할머니의 모습과 반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귀신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반인반묘가 된 홍콩할멈도 아닌 홍콩할매는 고양이처럼 날렵하고 빠른 몸놀림과 날카로운 이빨로 쥐가 아니라 어린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괴담을 전한 친구는 상미라는 친구였는데 상미는 다른 친구에게 이 소문을 듣고 헐레벌떡 뛰어와 침을 튀겨가며 몹시 진지하게 홍콩할매에게 잡아먹힌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할매에게 잡혀가지 않으려면 손톱과 발톱을 드러내면 안 되며 화장실 4번째 칸에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손톱과 발톱이 보이는 순간 홍콩할매는 그것을 뽑아버린 다는 것이었다. 듣고 있던 나는 팔목부터 팔뚝까지 소름이 좌르륵 돋았다.

우리 학교의 화장실은 첫 번째 칸은 문고리가 고장이 나 사용불가였고 2번째 칸은 종종 역류하는 곳, 그래서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던 곳이 3번째와 4번째 칸이었다. 그런데 그 두 칸마저도 이제는 하나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인가.  순식간에 소문은 5학년 전체를 넘어 전교생에게로 넘어간 듯 했다. 여자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손을 꼭 잡고 함께 화장실을 갔다. 홍콩할매가 화장실에 숨어있다 끌고 갈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러고도 무서워 그 비좁은 옛날식 화장실 한 칸에 두 명씩 들어가서 볼일을 보았다. ‘나 오줌 싸는 동안 보기 없기다~’라는 식의 다짐을 받고 한 명이 쪼르륵 오줌을 누는 동안 오줌을 누는 아이나 뒤돌아선 아이 모두 덜덜 떨면서 어디선가 나타날지 모르는 홍콩할매를 두려워해야만 했다. 겁이 많은 아이들 중엔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못가고 참는 아이도 생겨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못 말리는 상상가였다. 수업시간엔 창문 밖 몽글몽글 떠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고개는 선생님의 수업내용을 듣는 양 끄덕이며 필기를 하는 척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보물선 탐험을 하고 있거나, 북한군이 파놓았을 땅굴을 발견하고 있거나, 우주여행을 하기 위한 최초의 어린이 우주인이 되는 생각들을 하는 엉뚱한 어린이였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난데없는 홍콩할매의 출연으로 나는 홍콩할매의 괴능력과 아이들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채 잡아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괴로워했다. 내가 만들어낸 상상 속 할매의 모습은 <전설의 고향>에서 본 긴 머리 풀어 헤치고 피를 흘리며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보다도 더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할매는 검은색 바탕에 자주색 칼라의 치파오를 입고 머리는 희끗희끗한 회색의 다소 퉁퉁한 체격이었다. 고양이 발톱처럼 날카로운 손톱과 번뜩이는 고양이 눈을 가진 그녀의 모습에 나는 오금이 저려왔다.

내 머릿속은 온통 검은색 치파오의 홍콩할매 모습뿐이었다. 좋은 것만 생각하자고, 나쁜 것은 그만 생각하자고 나는 차분해지려 애썼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뇌는 대체로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더 강하게 지배한다. 그게 바로 부정성 편향이라던가.

하교 후 엄마가 간식으로 주신 톡 쏘는 사이다를 넣은 수박화채도, 이웃집 아주머니가 주신 밥알동동 띄운 식혜도 나의 겁먹은 마음에 불을 켜주지 못했다.

삼복더위라 모두 배만 간신히 가리고 자는 와중에 이불로 몸을 칭칭 감고 자는 나를 보고 가족들은 이상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홍콩할매에게 붙들려 가지 않기 위해 손톱은 물론이고 발톱도 숨기기 위해 이불을 칭칭 감고 잠을 잤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할 수 없었다. 엄마나 아빠가 내 이야기를 믿어줄 지 확실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입 밖으로 꺼내면 그 이야기가 진짜처럼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거실에 앉아 포도 씨를 뱉다가 문득 홍콩할매를 생각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아침마다 간밤에 일어난 홍콩할매의 활약상을 읊어주던 상미와 만나지 못하니 더 이상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더니 나의 뇌도 어느덧 스르륵 할매에 대한 생각을 잊고 지냈던 것.   

포도를 오물오물 먹으며 홍콩할매는 홍콩으로 갔을까, 아니면 더 이상 어린이들을 괴롭히지 않고 조용히 살기로 결심했을까. 홍콩할매는 누구를 만나러 그곳에 가는 길이었을까.홍콩이라는 곳은 어떤 도시일까. 나의 상상력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렇게 홍콩할매 소동은 다소 싱겁게 끝이 났고 그 여름도 끝나갔다.

물론 그후로도 수많은 귀신들을 알게 되었지만 홍콩할매만큼 나를 두렵게 했던 귀신은 없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한 번씩 홍콩할매를 떠올리며, 사람보다 귀신이 무서웠던 그 시절을 추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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