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예술가의 작품세계
엄마, 이거 봐봐
거실 테이블에서 이것저것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노트북을 응시하고 있는 나에게 아이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림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이미 두 아이를 재운뒤 갖는 혼자만의 시간이었는데.. 잠이 들다 엄마가 없자 이내 거실로 달려 나와 엄마옆에 자리를 잡은 첫째가 내심 야속했다.
다시 침실로 함께 들어가자는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린 채 하던 일을 끝내고 싶었던 나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아이에게 말을 건넨 채 내 할 일을 마저 하고 있었던 중이었다.(아마 이미 육퇴라고 생각한 뒤라 지쳐있었던 듯하다) 아이도 더 이상은 조르지 않고 엄마 근처에 자리 잡아 뽀로로 전자칠판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는데 무언갈 또 완성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고양이, 강아지, 새 등등 전자칠판에 예시로 나오는 그림을 보며 나름 연습을 하던 아이는 늘 해주던 엄마의 열렬한 호흥이 없자 몬가 이상함을 감지 챘는지 꽤 혼자 끄적거리다 나에게 자신만만하게 본인의 작품을 소개하기 이르렀다.
이건 81개의 알을 낳은 새 그림이야
흥미로운 아이의 그림소개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아이가 건낸그림이었다. 정말 빼곡하게 알을 정성스럽게도 그린 그림.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났다. 거기에 스토리까지 가미된 아이의 그림.
81개의 알이 태어나면 엄마새가 무척 바쁠 것이라면서 주변에 지렁이가 살고 있는 나무도 그려주고 엄마새의 바쁜 둥지 속 모습도 소개해주는 꼬마 예술가의 등장이었다.
'왜 하필 81개일까?'
의문은 금방 풀렸다. 소파뒤 100까지 쓰여있는 숫자공부표를 보고는 왠지 클꺼같은 81이란 숫자가 마음에 들어서 그렸다는 친절한 해설까지 해주던 아이의 작품소개.
"엄마새는 아기들을 돌봐야 해서 무척 바쁘거든, 81개의 알이 태어나면 정신이 없을 거야"
그러면서 아이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언제쯤 끝날지 내가 보고 있던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아이에게 큰 칭찬과 놀라운 리액션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한 스푼 담아 아이를 다독여줬다.
이내 아이는 쑥스러움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미소로 말했다. "이 그림 카메라로 찍어도 돼!" 평소 sns에 글이나 그림을 올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본인의 그림도 업로드하라는 이야기 같았다. 이런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마 아이가 그린 엄마새는 어쩌면 나를 생각하며 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81개의 알을 돌보느라 바쁠 것 같다던 엄마새는 아이의 욕구대로 다시 침대에 가서 재워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무언의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
81만큼 바빠 보였던 엄마가 미안해졌다. 더 이상 어릴 때처럼 무지막지 떼쓰지 않는 7살의 아이가 조금 안쓰럽고 대견도 했다.
아이의 그림을 사진도 찍고 남편에게도 자랑했다. 우리 아이는 천재라고..!(어느 부모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아이를 안아 침실로 향했다. 아이가 침실에서 엄마인 나를 따라온지 한 시간쯤 지난 시간이었다.
둘째 동생 육아로 지쳐버린 엄마가 조금 야속했을 첫째를 토닥이며 다시 잠을 재웠다. 내 팔을 꼭 붙드는 손이 귀엽고 안쓰러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