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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Lapres midi Jan 10. 2023

너나 잘하세요!

말은 부메랑이다 

잔소리가 유독 많은 남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방어이자 공격은 “너나 잘하세요!”다. 사람이란 완벽할 수 없기에 이 한마디로 아주 잠깐은 잔소리의 크레셴도를 막을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안 먹힐 때가 있지만 매번 등짝 스매싱을 날릴 수도 없으니... (조폭 마누라를 상상하시면 안 되고요)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서 엄마인 나의 고민도 시작됐다. 

‘방학 동안 유튜브 보는 시간만 길어지는 건 아닌지, 어떻게 하면 6학년이 되는 아이에게 책을 읽힐 수 있을지...’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된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24시간 잠자고 밥 먹고 설거지하는 시간 빼면 책을 들고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우리 집에선 별효과가 없었다.  남편의 비협조 때문이었을까? 해가 바뀌고 얼마 후 책장을 훑어보던 남편이 하는 말,

“작년엔 한 권도 못 읽었네”

옆에서 그 얘길 듣는데  한숨이 나왔다. 이 남자와 결혼한 이유 중 하나가 책 선물 때문이었고(이 남자도 책을 좋아하는구나!), 결혼하고 본가에서 책을 한 보따리 가져오길래 ‘이 남자는 진짜 책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 아니 착각을 했던 것이다. 남편의 책들은 책장에 꽂힌 후 이삿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하고 책 읽는 모습을 본 게 아마 열 손가락 안에 들려나? 속았다. 완전히! 그러다 보니 책유아는 나만의 순진무구한 희망사항이었고 책을 읽어주기는 커녕 유튜브 보여주는 아빠라니요...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냐는 반박에 책만 읽는 나는 순간 구식 엄마가 돼버림!)


이 숭고한 지면에 알량한 부부싸움이나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려고 한 건 아니고 얼마 전 티브이(알쓸인잡)를 보다가 도끼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적인 일이 있어서다. 오프닝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언급됐는데 책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왜 좋아하는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혹시나 꿀팁이 있을까 해서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는데 질문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언제부터 책을 읽었지? 난 왜 책을 읽고 있지? 난 아이에게 왜 책을 읽으라고 하는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들은 나를 추억의 비행기에 태워 어린 시절로 데려갔다. 어릴 적의 나도 책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집에 책이 많지도 않았고 부모님이 책을 읽어 주신 기억은 6살 때 시계 보는 법을 알려주는 그림책이 전부였다. 세계명작선 10권짜리가 있긴 있었는데 그중 재미있는 이야기만 쏙쏙 반복해서 읽었을 뿐 다 읽지는 않았다. 학교 다닐 때 엄마가 사 주신 소년소녀문학전집 60권짜리 전집과 위인전집도 책장을 차지하는 근사한 소품이었을 뿐 열심히 읽은 기억은 없다. 정말 심심하면, 놀다 놀다 놀거리가 떨어지면 마지못해 읽었다. 물론 책이란 게 처음에 펴기는 힘들어도 한 번 펴면 계속 읽게 되는 힘이 있어서 완전히 담을 쌓고 지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책을 좋아한다고도 할 수는 없었다. 가끔 친구들이랑 누가 더 빨리 읽는지 내기를 하거나 친한 친구가 읽은 책을 경쟁심리로 따라 읽었던 정도였다. 그러니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 마라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닌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책을 들고 다니는 선배들이 괜히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그런 선배들은 꼭 책을 옆구리에 한 권씩 끼고 다녔단 말이지) 전공이 사회학부다 보니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서 나도 덩달아? 읽게 됐다. 하루키를 처음 접한 것도 아마 이때였을 것이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책이란 게 원래 이런 거였나 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받고 그 뒤 일본 문학에 잠시 심취했지만 취업하고 나선 다시 소홀해졌다. 그래도 책을 항상 들고 다니는 습관은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못 읽어도 고! 하는 심정으로.     


취업과 결혼, 육아로 넘어오면서 책은 점점 멀어져 갔지만 공부도 시험 끝나면 하고 싶다고, 책도 시간 많을 땐 안 읽다가 막상 시간이 없으니 더 읽고 싶어졌다. 육아와 가사로 일주일이 월화수목금금금 같은 쳇바퀴 도는 삶.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애를 재우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가 주는 소소한 위안과 기쁨을 느끼며  이 책 저 책 손을 데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한 독서의 습관이 지금까지 왔다. 이런 나의 독서 이력을 되돌아보며 내가 과연 아이에게 잔소리할 자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가 읽고 싶을 때 읽었을 뿐인데 왜 아이에겐 책을 읽어야 공부도 잘할 수 있다느니, 책을 많이 읽어야 수학도 잘할 수 있다느니, 여기저기서 어쭙잖게 주워들은 이유들을 들이댔을까? 특히나 내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시대는 미디어가 대세여서 나이 고저를 떠나 독서인구가 현격히 줄었다는데, 마치 우리 아이만 책을 안 읽는 것 마냥 닦달했을까? 나 스스로가 책을 많이 읽어서 성공한 인생 본보기도 아니고 ‘주위에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다 다독가였다더라’는 카더라 현상에 휘말려 아이에게 책과 독서에 대한 인상만 안 좋게 심어준 꼴이 됐으니... (이를 어이할꼬) 그냥 때가 되면 알아서 읽을 텐데, 또 애가 안 읽겠다고 하면 어쩔 건데 그걸 두고 나는 책 얘기만 나오면 난리 난리 생난리를 쳤으니.      


사실은 이번 방학도 시작하자마자 편법을 좀 썼다가 내가 내 발등을 찍었다. 사고 싶은 것을 책으로 맞바꿔서 ‘몇 권 읽으면 사 줄게’로 약속한 것이다. 선주문 후독서여서 주문하고 배송까지는 열심히 읽는 것 같더니 배송 완료와 함께 독서 완료.(내가 애를 너무 믿었지) 요즘말로 킹 받아서 책 안 읽으면 반납해버리겠다고 협박이나 하는 엄마라니. 진정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독서인건지.      

티브이에서 말하는 잘못된 독서교육의 예시가 바로 나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독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책을 넌지시 밀어내는 아이라면 ‘책도 가끔은 재미있어’라던가 ‘책이 때때로 도움이 되기도 해’라면서 가볍게 권하는 정도만 했어야 했는데. 차라리 솔직하게 ‘엄마도 어렸을 땐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어.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 보니 좀 더 일찍부터 읽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들더라. 세상엔 좋은 책이 너무 많은데 읽을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 그래서 너만큼은 일찍부터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서 읽으라고 하는 거야’라고 어른답게 말해줬어야 했는데.


이제까지 아이에게 책을 안 읽어도 너무 안 읽는다며, 그렇게 유튜브만 보면 와이파이를 꺼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나를 보며 저 하늘에 계신 분이 했을 법한 말이 귀에 맴돈다.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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