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시작하며
이제 곧 있으면 새해가 시작된다. (현재 시각 12월 31일 저녁 7시 20분) 매해 가장 분주한(마음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없을) 연말연시를 꼼짝없이 집에 갇혀 지내게 됐다. 아이가 독감 확진을 받고 격리의 시간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여느 때와는 다른 분주함으로 새해를 맞겠구나 싶으니 마음 한쪽이 심란해졌다. 거창한 새해 이벤트를 원한 건 아니었지만 이것 또한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답답함 때문인지 엄동설한에도 수시로 창문을 열고 환기도 시켜봤지만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매년 12월은 나에게 블루한 달이었다. 한 해를 돌아보면 늘 뿌듯함보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컸고 다가올 새해를 바라보면 두려울 때가 많았다. 특별한 목표나 계획도 없고 사실 어제와 비슷한 내일일 뿐인데 갑자기 뭔가 거창한 뜻을 세우는 것도 그렇고. 또 손 놓고 해 뜨는 것을 바라보자니 허망할 것 같고. 다이어리를 사서 쟁이는 이유인지도. 크리스마스로 세상은 한 달을 떠들썩 준비하는데 정작 기독교 신자인 나는 아이의 선물과 성탄 예배만 챙기는 정도다. 세상의 소란 속에서 오히려 너무 조용한 내 삶이 초라해 보여서일까? 그냥 잘 살다가도 12월만 되면 한 해를, 그 시간을 살아온 나를 평가받는 마음이 되고 심사대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올해는 유난히 기를 쓰고 나에게 집중했기에 나름 괜찮은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12월 31일이 되고 보니 다시 마음이 번잡해졌다. 아마 아이의 고열로 전날 밤 한숨도 못 자서 그런 것 같은데 자책하려는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 때 싱크대 한 쪽에 쌓여있는 음식물 쓰레기가 보였다. 코에 바람도 넣어줄 겸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고 오자 싶어 집을 나섰다. (쓰레기가 내 마음처럼 보이기도 했고)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모습에 나는 더욱 무너졌다. 퀭한 눈에 삐친 머리, 무릎 나온 바지의 모습, 그 손에 들린 게 결국은 쓰레기라니.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제발 아무도 만나지 말기를...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건 무척 창피할 것 같았다. 쓰레기만 얼른 버리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데 경비 아저씨가 자전거를 지나간다. 순찰을 도는 중인가 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둠 속인지라 아저씨께 인사를 했고 아저씨도 반갑게 대응해 주셨다. 그렇게 인사만 나누고 그냥 지나가시는 거면 좋았으련만 쓰레기장 앞에 자전거를 세우시는 게 아닌가. 아, 아무도 마주치기 싫었는데. 민망함을 무릅쓰고 쓰레기장으로 가는데 아저씨가 내 손을 가리키며 물으셨다.
“그거 버리실 건가요?”
“네.”
“그럼 주세요. 정리하면서 제가 버릴게요”
“아니에요. 그냥 제가 버리면 돼요”
“아니에요. 주세요. 제가 버릴게요”
음식물 쓰레기는 버릴 때 유료이기도 하고 다른 쓰레기도 아니고 음식물 쓰레기인데 달란다고 맡기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서 한사코 괜찮다고 했는데도 아저씨는 자신이 버리겠다고 뺏다시피 가져가셨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아저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음식물 쓰레기를 넘기고 할 말은 아닌 듯싶었지만 너무 감사하기도 했고 또 날이 날이니 만큼 그냥 돌아설 수도 없어서 새해 인사를 드렸다. 나이에 안 맞게 샤이니한 나로선 용기를 낸 인사였다. (평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또는 목례로 인사한다)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저씨도 우렁찬 목소리로 화답해 주셨다. 그렇게 돌아서는 순간 내 마음은 가벼워지고 머릿속은 개운해졌다. 눅눅하고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랄까. 한 사람의 배려와 짧게 주고받은 인사로 기분이 이렇게 맑아질 수 있다고? 하지만 순간 스쳐가는 기분은 분명 기쁨이었다. 새 힘을 북돋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내가 찾고 있던 것이 그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12월 31일. 왠지 기쁘고 희망찬 날이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는데 오는 우울감. 그 감정에 매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쁨과 희망을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견했다. 그건 파티나 선물이 아닌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작은 배려, 인정, 용기에서 만날 수 있는 보석이었다. 현관문을 나설 때와 들어갈 때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마음에서 반짝임이 느껴졌다. 내년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 것 같았다. 큰 계획이나 그럴듯한 목표가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눌러야 할 선택 버튼은 바로 용기와 배려였다. 용기를 내서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나이 한 살 더 먹는 나의 나잇값일 것이다. 어제의 나보다 좀 더 나은 사람, 작년의 나보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됨으로 주위가 좀 더 밝아지고 따뜻해지는 것. 2023년의 소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