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 전세를 놓고 남의 집에 전세를 살고부터 2년마다 어김없이 부동산에서 연락이 온다. 두 집에 대한 새 계약 문제. 둘 중 하나다. 계약 연장이거나 새 계약자를 찾을 것인가 하는. 세입자로 산다는 건 삶의 큰 한 부분을 내 의사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 전에는 그것을 뼛속 깊이 알지 못했다. 2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른다. 계속 살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임대인의 의사에 따라 삶의 터전이 그리고 통장 잔고가 위태위태해지곤 하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언제부터인가 좀 지치기 시작했다. 부동산에서 온 전화를 받는 것도 어떤 즉각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도 내겐 예민하게 다가왔다. 어느 틈에 그 역할을 남편에게 넘겼다. 큰 스트레스 없이 의사소통을 이뤄내는 그의 뒤에서 난 편안함을 느꼈다. 양쪽 두 집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람들과의 신경전을 하지 않아도 될 자유를 남편은 내게 가뿐히 선사했다.
더 이상은 못 참아.
그림책 <왼손에게>를 끝까지 읽고 난데없이 남편이 떠올랐다. 왼손과 오른손이 힘을 합쳐 얄미운 모기를 ‘짝’하고 잡아냈을 때의 통쾌함에서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서로가 참 달라 호감이 생겼고 살면서는 또 너무 달라 치열하게 싸웠다. 내 뜻대로 이 한 사람을 휘어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어디서 생겨난 오만이었을까. 한 사람은 한 사람일 뿐, 나도 그렇고 그도 변하지 않았다. 단지 조금은 예전보다 서로가 무뎌지고 있을 뿐. 여전히 이해 못 할 것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리 큰일 날 일도 아니라는 체념은 어쩌면 세월이 가져다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오른손이어서 왼손이어서, 남자여서 여자여서, 아빠여서 엄마여서, 다른 가풍에서 다르게 길들여진 위치에서,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던 때도 있었지만(여전히 아주 가끔은 그렇기도 하지만) 이제는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손톱으로 꾹꾹 눌러주거나 손을 맞대 공동의 퀘스트를 ‘짝’하고 수행하는 동지가 되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요즘 안온하다.
오른손은 억울했다.
숟가락질 양치질
가위질 빗질까지도 오른손 일이었다.
왼손은 핸드크림을 바를 때만 먼저 슬쩍 다가왔다. 얄밉게.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아이들 아빠, 아이들만 끔찍이 챙기는 통에 가끔 섭섭도 하지만 뭐 나도 엄마가 되고부터는 아이들이 최우선이었으니까 비긴 셈 치자. 오른손잡이 부모에서 밥은 오른손으로 먹고 글씨는 왼손으로 쓰는 두 아이가 태어났다. 서로 다른 부모에게서 그만큼은 더 개성 있는 아이들이 우리 옆에 있다. 부모라는 우리는 결국 아이들의 작은 성취에도 크게 기뻐하는 유일한 사람인 것이다. 지금으로선 완벽한 육아 파트너. 아이들이 독립한 그다음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런 동화 속 결말은 믿지 않는다. 삶이라는 게 어찌 그리 만만하던가. 왼손과 오른손처럼 참을 만큼 참고, 억울할 때도 분명 있지 않겠는가. 그러다 성가신 모기도 함께 잡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같이 웃을 때도 있을 것이다. 따로 또 같이. 그렇게 난 우리 부부의 다음 트랙도 기대가 된다. 마침 오늘은 당신의 생일, happy birthday to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