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관
한 달에 한 번 극장에 갔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혼자서.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 그전에는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무슨 큰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통신사에서 주는 혜택이었기에 버리긴 아까우니 꼬박꼬박 챙겼을 뿐이다. 근데 그게 꽤 괜찮은 시간을 내게 선사했다. 집에서도 혼자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극장에서의 홀로 관람은 실로 느낌이 다르다. 특히나 극장을 전세 낸 듯 평일 오전의 한가한 극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통신사 혜택이 유지되는 한동안은 그렇게 혼자서 공짜 영화를 보러 다녔었다. 어떤 영화들을 봤을까. 기억에 남는 영화는 무얼까. 하나를 꼽자면 단연 ‘007 스카이폴’이다. 정보를 찾아보니 영화 개봉일이 2012년 10월 26일이다. 12년 전 지금과 비슷한 계절에 난 이 영화를 봤던 거다. 아이들은 유치원 다니던 때. 여전히 아기지만 말귀는 쉬이 알아들어 예전보다야 훨씬 육아가 편해졌을 때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감기를 달고 살아 수시로 병원에 다녔을 때이기도 하다. 난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살았을까. 그때의 내가 갑자기 궁금하다.
007 시리즈. 이 영화는 미디어 믹스 역사상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 중 하나라고 한다. 영화의 상징인 총을 쏘는 동작으로 시작하는 총열 시퀀스만큼 유명한 첫 장면이 또 어디 있을까. 그때 흐르는 음악은 또 어떻고. 시퀀스만 마주했는데도 관객인 나는 이미 영화에 십중팔구 압도당한다. 그리고 또 이 영화에는 치명적인 필살기가 하나 더 있다. 단 몇 분. 오프닝 영상과 같이 나오는 주제가가 바로 그것이다. 언제였던가. 어떤 007 영화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오프닝 시퀀스를 보고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음악은 강렬하고 영상은 꽤 섹시하다. 홀로그램 같은 패턴들이 마구 흔들리듯 반복되며 본드걸의 실루엣이 유혹적으로 등장한다. 단 3~4분의 오프닝 주제가는 줄거리를 압축하듯 보여준다. 단박에 매료된다. 그렇게 007 시리즈의 타이틀 주제가를 좋아하게 됐다. 최근작들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주제의 상징과 제임스 본드의 고독함이 물씬 풍기는 터라 더욱 매력적이다. 본드 시리즈가 개봉되면 내용보다도 이번 주제가는 누가 불렀고 어떤 곡일지가 가장 궁금하다. 나만 좋아한 게 아니었던지 2012년 ‘스카이폴’, 2016년 ‘스펙터’, 2022년 ‘노 타임 투 다이’는 오스카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늘이여 무너져라.
우린 당당히 설 테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곳에서.
스카이폴. 조명이 꺼지고 극장에 몇 되지 않는 관람객과 함께 영화는 웅장하게 시작한다. 극장의 빈 공간들을 아델의 목소리가 채운다. 그때는 아델이 누군지도 모를 때다. 노래와 화면에 넋이 나간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진다. 왜 그랬을까. 시작 5분 만에 영화를 다 본 듯했다. 제임스 본드에게 스카이폴이란 극복하지 못한 어릴 적 트라우마를 의미한다고 한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파란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의 고뇌에 이미 마음이 아팠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반해버린 스탕달 증후군이 잠시 내게 다녀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아마도 모든 게 완벽했을 것이다. 앞자리가 비었으니 누구의 뒤통수를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스크린은 적당히 컸으며 사운드는 역시 끝내줬겠지. 아니다. 어쩌면 육아에 지쳐있던 난 한 달에 한 번 자신에게 준 선물 같은 그 시간이 퍽 좋았나 보다. 아델의 노래는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짧은 5분이라는 시간을 영원한 감동의 시간으로 내게 와줬던 건 아니었을까. 그날의 그 순간, 여전히 난 12년 전의 스카이폴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007 스카이폴은 우리나라에서 역대 007 시리즈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고 처음으로 오스카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림책 <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관>에서는 삶이 곧 영화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는 어디론가 떠났다. 남겨진 아빠와 딸은 같이, 어떨 땐 따로, 극장에서 위로를 받고 삶을 살아간다. 마침내 그들은 그곳에서 오래도록 그리워한 이를 만나게 된다. 그게 현실이든 꿈이든.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영화를 보러 간 소녀처럼 나도 소망한다. 라라랜드처럼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왈츠를 추고 싶고, 사운드오브뮤직처럼 커튼 옷을 입고 알프스 초원을 누비고 싶고, 티파니에서아침을처럼 창가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고 싶고, 라붐처럼 누가 뒤에서 헤드폰을 씌워줬으면 좋겠고, 시네마천국 토토처럼 알프레도 할아버지 자전거를 타고 싶고, 비긴어게인처럼 도심 빌딩 숲 옥상에서 노래도 하고 싶고, 코코처럼 그리운 사람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고, 러브레터처럼 하얀 눈세상에서 오겡끼데스까를 외치고 싶고, 노팅힐처럼 누군가를 생각하며 사계절 거리를 걷고 싶고, 빌리엘리어트처럼 백조가 되어 하늘을 날아도 보고 싶고, 보디가드처럼 그에게 달려가 폭 안기고도 싶다. 나는 괜찮을까?
괜찮아요. 영화 결말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그렇다. 아름다우면 가끔은 모든 게 괜찮아질 때가 있다. 스카이폴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