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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버와 샬롯 Nov 12. 2024

막혔다. 어쩌지?

: 문제가 생겼어요!

싱크대에서 물이 안 내려간다. 설상가상 옆에 있는 세탁기까지 말썽이다. 맙소사! 남편이 출장 간 날 바로 일이 터졌다. 큰돈 들이지 않고 혼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인터넷 서핑을 하며 타인의 경험담을 탐색했다. 막힌 걸 뚫기 위해 액체를 붓고 기다리고 확인하기를 수차례. 하룻밤 지나 결과를 확인해 보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세탁기는 탈수가 되지 않는다. 탈수 기능을 여러 번 돌려도 물은 흥건했다. 그릇은 쌓이고 벗어놓은 아이들 교복 셔츠도 그대로다. 아, 설거지도 못 하겠고 빨래까지 이렇다니. 아침부터 총체적 난국이다. 이게 웬 난리인가. 당분간 우리 집 맥가이버 남편도 없는데. 이 상황에 출근은 언감생심. 집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부랴부랴 정성스럽게 쓴 출장 후기 블로그 글을 찾아 읽고 업체에 연락했다. 오전 중으로 올 수 있다고 한다. 휴, 다행이다. 전화받는 목소리도 친절하다. 기다리는 동안 낯선 사람을 혼자 집에서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에 금세 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근처에 사는 조카라도 불러야 하나 고민만 하며 시간은 흘렀다. 초인종이 울리고 현관문을 여니 다행히 기사님 인상이 푸근하다. 인상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안심이 됐다. 꽉 막힌 것 같다며 일이 수월할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작업 중 기사님 핸드폰에서는 예약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세상엔 우리 집 말고도 막힌 집이 꽤 많구나, 수요가 눈앞에 보이니 직업으로도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짧게 스쳤다. 한 시간 남짓 작업 끝에 싱크대는 시원하게 뚫렸다. 세탁기도 정상적으로 작동됐다. 이틀간의 속끓임 이후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만 같았다. 한숨 돌렸다. 세탁기를 다시 돌리고 빨래를 널고 밀린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야 늦은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할머니가 수를 놓으신,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식탁보예요.
다림질을 하다 잠깐 딴생각을 했는데......
큰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어요.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도 이런 얼룩에는 맞설 수 없어요.


문제에 부딪혔을 때 당신의 대처는 어떤 스타일인가? 여기 그림책 <문제가 생겼어요!>의 엄마처럼 당신은 현명한 사람인가.


다리미 자국 위에 그려지는 아이의 비상한 여러 해결책보다 엄마의 마법 같은 단 하나의 방법에 난 반해버렸다. 그런 번득임을 갖고 싶다. 그녀 같은 지혜를 갖고 싶다.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때때로 불같이 화를 내는 나로선 분명 펄쩍 뛰었을 것이다. 눈을 치켜뜨고 “뭐야, 이거 누가 그랬어? 소중한 건데 어쩌면 좋아?” 당신은 어떤가.


아이와 관련된 글을 접하다 보면 종종 이렇게 된다. 난 왜 이럴까, 여기처럼 왜 좋은 엄마가 아닌 걸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는 것. 언제쯤이면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자랑스러운 사람, 멋진 엄마가 되고 싶은데 쉽지 않다.


가장 비싼 세제로도 지우지 못할 거예요.
어떤 현명한 충고도,
인터넷에서 찾은 좋은 방법도 소용이 없어요.


자책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아무리 휘황찬란한 육아 블로그 글을 염탐한다 해도 그건 그 집 일일 뿐이다. 그래서 좋은 엄마 콤플렉스는 접기로 했다.


최상은 아니지만 난 나쁘지 않은 사람이다. 아니 괜찮은 사람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엄마는 아닐지라도 예전도 그랬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그 세월들을 헛된 시간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노력이 통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을 뿐이다.


어쩌면 여전히 엄마로서의 나는 진화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영유아의 엄마, 어린이의 엄마, 청소년의 엄마까지 그렇게 점차 다른 엄마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더욱 자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엄마라는 내공도 쌓일 테니 언젠가 나라는 엄마도 조금씩 너그러운 사람으로 변모되어 있지 않을까.


그냥 그런 거다. 내 기준이 좀 높았을 뿐 지금의 시절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막힌 하수구로도 오만걱정으로 머리가 지끈해지는 사람이지만 결국 물고기 하나 정도는 너끈히 그려내는 엄마가 될 것이다. 그 엄마는 그 엄마의 물고기를 나는 나의 물고기를. 적어도 꽉 막힌 엄마만은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씻겨 내려가지 않을 묵은 기름때는 쌓이지 않도록 하루하루 나대로의 엄마로 살필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아이들을 본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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