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찍어준 사진 속 나를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화장실에 앉으면 푹 퍼지는 허벅지살. 손날을 세워 ‘딱 이 정도만 되면 좋겠다.’라고 오늘도 부질없이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내 '나는 플라스틱이 아니니까 앉으면 당연히 퍼지지.'라고 금세 합리화에 돌입한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가기 전 탕비실에서 쌀과자 두 개를 챙긴다. 쭉 뻗은 늘씬한 다리에 대한 소망은 있지만 당장 무언가를 하고 싶진 않다. 짭쪼롬한 과자 두 개를 순식간에 와작와작 먹어치운다.
그런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친구가 찍어준 내 뒷모습 사진이 문제였다. 일부러 늘려둔 것 마냥 튼실한 허벅지가 충격이었다. 거울 속 내 모습에게, 아니, ‘이 정도면 괜찮지’ 필터가 적용된 내 눈에게 배신당한 순간이었다.
직장인에게 다이어트란 사장 면전에 사직서를 집어던지기만큼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 식사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환경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회사에 다닌 적 없는 사람이라 확신한다. 직장인인 우리가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원인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건강한 식단? 그런 건 없습니다.
다이어트의 90%는 식단이라고 한다. 단백질을 많이 먹고 탄수화물을 줄인다. 짜고 맵고 단 것은 자제하고 신선한 채소, 닭가슴살 등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는다.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이 이론을 그대로 실천하기란 직장인에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10분의 단잠을 위해 거르는 아침, 구내식당이나 외식으로 채워지는 점심, 야근하면 배달음식, 칼퇴하면 친구와 함께하는 치맥. 그 어느 곳에도 신선한 풀 쪼가리가 들어올 틈이 없다.
게다가 회사 돈으로 가득 채운 풍족한 탕비실을 도저히 거역할 수 없다. 출근길에 사 온 초콜릿, 옆 자리 직원이 준 캐러멜은 손만 뻗으면 닿는 서랍 안에서 대기 중이다. 피곤한 아침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며 당 충전을 해야만 업무를 시작할 기운이 난다.
둘째. "그거 먹고 일이 되겠어? 괜찮아, 이건 먹어도 돼."
“저는 저녁 안 먹을게요.”
이 한마디에 직원들의 눈길이 쏟아진다. 젊은 직원이 식사를 굶는다니, 밥심으로 사는 K-상사로서 용납할 수 없는 행태다. 한 입만 먹어, 배고파서 어떻게 일하려고. 오늘 메뉴 돈가슨데.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터 해.
도시락을 싸와도 마찬가지다. 아침잠을 희생하며 만든 도시락도, 직원들의 걱정 어린 훼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외식이라도 하는 날엔 무거운 도시락을 그대로 집에 가지고 돌아가게 된다.
셋째. 피곤해 죽겠는데 퇴근하고 헬스장에 어떻게 가냐고요.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침대에서 현관까지라고 했던가. 이와 마찬가지로 사무실에서 헬스장까지도 너무나 멀다. 심리적 거리가 엄청나다. ‘가기 싫어’라고 생각할 때마다 1km씩 늘어나는 거리감. 막상 가면 어떻게든 해내는데, 바로 그 ‘막상 가기’가 참 힘들다.
아침에 일어날 때만 해도 분명 ‘오늘은 꼭 운동 가야지!’라고 마음먹었다. 운동복과 단백질 셰이크까지 에코백에 넣었다. 벌써 운동을 간 것처럼 뿌듯하다.
하지만 업무에 치이고 상사에게 시달리는 동안 강력하(다고 믿었)던 의지는 힘을 잃는다. 오후 4시쯤에는 머릿속에서 토론의 장이 열린다. ‘간다’와 ‘만다’의 대결이다. 퇴근하고 회사 앞 떡볶이 집에 가자는 제안을 들은 날에는 더욱 치열해진다. 승리하는 건 언제나 ‘운동 가지 말자’ 쪽이다. 깨끗한 운동복을 그대로 집에 가지고 온다.
내일은 진짜 가야지, 내일부터 진짜 운동 빠지지 말아야지. 식단도 열심히 해야지. 내일은 꼭 도시락 먹어야지. 내일부터 정말 간식 끊어야지.
그렇게 다짐하는 내일은 꽤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내 허벅지는 부피를 늘려갔다. 동시에 체력은 바닥을 기었다. 계단 한 층만 올라도 숨이 차올랐다.
가난한 체력에 늘어진 살. 슬슬 위기를 느꼈다. 진심으로.
또다시 의지가 화르륵 불타올랐다. 내일부터? 아니, 바로 오늘부터 시작해야겠다. 나는 꽤 쉽게 불타오르는 성향이다. 퇴근길에 바로 역 근처 헬스장에 들렀다.
여태까지 많은 운동센터에 기부를 해왔다. 예컨대 핫요가, 필라테스, 점핑 다이어트, 킥복싱 등등.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의욕을 부추겼다.
기세를 몰아 PT 50회에 바디 프로필 과정을 등록했다. 목표가 있으면 반강제로라도 꾸준히 할 것 같다는 나름의 논리적인 이유였다.
무이자 3개월 할부! 거금을 들였으니, 돈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정말 다를 거야, 진짜로.
나, 당신, 우리들의 이야기.
'오늘부터 다이어트' 연재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