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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Jan 27. 2021

지갑을 주워주고 파출소에서 들은 말

썩 유쾌하진 않았다고 하네요.

 

 처음 맞이한 대학교 겨울 방학 때였다. 집까지는 4 정거장 더 가야 했지만 망설이지 않고 벨을 눌렀다. 투박하고 까만 지갑을 손에 쥐고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목표는 코너에 위치한 작은 파출소였다.


 잘못이 없어도 경찰차가 지나가면 긴장하게 되는 것처럼, 파출소 앞에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이내 용기를 내어안으로 들어갔다. 아담한 내부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접수대 앞에 앉아 있는 젊은 경찰과, 그 주변을 무료한 듯 서성이는 나이 든 경찰.


 “버스에서 지갑을 주웠어요.”


 젊은 경찰은 지갑을 받아 들며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주운 위치 등 몇 가지 정보를 대답해주었다. ‘별 일도 아니네. 괜히 긴장했어.’ 돌아서려는데 내내 옆에 서서 지켜보던 나이 든 경찰분이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은 A4용지를 내밀며 처음 입을 열었다. 


 “성함이랑 연락처 좀 적어주세요.”

 “왜요?”


 필요한 사항이라면 당연히 제공할 생각이었지만, 궁금했다.


 “지갑 안에 도둑맞은 게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때 한 마디도 못하고 파출소를 나온 것이 내내 속을 끓였다. ‘제가 지갑 속에 돈을 훔쳤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상황이 끝나고 나서야 할 말이 생각나는 건 여전했다.


 지갑 속 내용물이 도난당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제보자의 신원을 받아둔다. 별 일이 다 일어나는 유별난 세상이니 납득은 된다. 하지만 선의로 지갑을 주워준 사람에게 굳이 곧이곧대로 말했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어찌 되었든 당시 분한 마음에 ‘다시는 길에서 그 어느 것도 주워주지 않을 거야.’라고 불순한 다짐을 했다.






 한동안 기억 저 편에 묻어뒀던 그 일을 다시 꺼낸 건 퇴근길 지하철에서였다.


 저녁 6시 반, 회사에서 탈출한 직장인들이 지하철로 몰리는 시간이었다. 이미 꽉 들어찬 9호선문이 열렸다. 이번에 보내도 다음 차 역시 꽉 막혀 있을 것이 뻔했다. 타야만 했다. 겨울이불 집어넣듯 온몸으로 꾸욱 꾸욱 밀며 간신히 탑승했다. 닫히는 문틈으로 타지 못한 사람들의 짜증 섞인 표정이 보였다.


 신논현에서 종합운동장까지 5 정거장. 환승역인 종합운동장은 내리는 만큼 타는 사람도 많아 무척 부대꼈다. 역행하는 연어의 심정으로 다시 휩쓸려 들어가지 않도록 간신히 탈출했다.


 회사에 있을 때보다 피곤한 느낌을 받으며 환승을 위해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가던 때였다. 뭔가 가뿐하다 했더니 어깨에 걸쳤던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인파에 쓸려 숄더백이 어깨에서 흘러내린 것이다.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할 틈도 없었다. 반사적으로 뛰어서 되돌아갔다. 문은 닫혀있었다. 지하철은 달릴 채비를 마쳤다.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가방 속에 지갑하고 화장품 파우치, 보조배터리... 카드는 재발급하면 되고... 신분증이 문젠데...’


 그나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에 다다랐을 때였다. 취익-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다른 칸에서 무언가가 문틈에 끼었거나 무슨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서 찰나의 순간 가방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사람들을 뚫고 다시 들어갈 수도 없었다. 


 “혹시”


 ‘혹시 가방 보신 분!’하고 소리치려던 순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 머리 위로 누군가의 손이 쑥 올라왔다. 가늘고 하얀 손에 익숙한 갈색 가방이 들려있었다. 구세주의 손은 든 것을 그대로 문 밖으로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얼른 주워 들고 돌아봤을 때 문은 이미 닫혀있었다.


 곧바로 떠나간 지하철을 한동안 멍하니 지켜보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아마 손의 주인은, 어깨에서 떨어지는 내 가방을 보고 나를 애타게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내 귀에 꽂힌 이어폰에 의해 막혔을 것이다.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지갑을 주워주고도 도둑 취급을 받았다며 떨어진 가방을 방치하진 않았을까? 그렇다면 가방을 잃어버린 사람은 지하철 안내원에 연락을 하고 내내 마음 졸이며 뛰어다녔어야 했을 것이다.






 삭막한 세상이다. 주워주고도 도둑으로 몰릴 수 있으니 손을 대지 않는 게 상책이라며 방관하는 게 익숙한 요즘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지만 점점 각박해져 가는 사회적 분위기가 씁쓸하기도 하다. 잃어버린 사람의 애타는 초조함을 떠올린다면 용감하게 나서야 하지 않을까. 직접 겪고 나야만 깨달으니 창피하기도 하다.


   

 가방 사건 덕분에 다시 생각난 지갑 사건. 파출소에 들른 며칠 후,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는 낯선 아저씨의 감사한 마음을 전해주었다. “주워서 파출소에 맡겨 줘서 고마워요, 사례를 해야 하는데 넉넉지가 않아서... 미안해서 어쩌지요.” 괜히 주워줬다며 투덜거렸던 스스로가 창피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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