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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Jan 07. 2021

세상에서 가장 긴 10초를 보냈습니다.

똑같은 10초인데 말이죠.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이렇게 말하니 물리적인 거리를 계산해야 할 것 같다. 수학이든 지리든 젬병이었기에 자세한 건 모른다. 대충 예상컨대 우리나라와 대척점인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 남동 해상 정도?


좀 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넘어와 본다. 내가 지난 일주일 동안 가장 멀리 이동한 거리는 어디였을까? 집에서 회사까지의 38km 거리가 아니었나 싶다. 지방 출장이나 여행이 없었으니 출퇴근길이 단연 1등이다.


그러나 얼마 전 강력한 일인자가 등장했다. 얼마나 멀고 아득한지 아무리 가려고 마음을 먹어도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 것이다. 가야 하니까 가자. 다리를 어르고 달래도 엄두가 안 난다며 꼼짝도 안 한다. 얼마나 머나먼 거리기에 이토록 발조차 못 떼는 걸까? 누구나 들으면 무릎을 탁 치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일 것이다. 헬스장으로 향하는 침대에서 현관까지의 거리이다. 


내 방에서 걸어보니 정확히 열 발자국이다. 하지만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인 순간 열 발자국은 만 발자국으로 바뀐다. ‘가야지, 빨리 일어나!’ 머릿속으로는 이미 걷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현관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번엔,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은 언제일까? 

단언컨대 나에게는 스쿼트 한 채 버티는 10초이다.


스쿼트는 운동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아는 기초적인 동작이다. 아주 간단하다. 엉덩이를 뒤로 쭉 빼서 허공에 앉는 자세를 취한다. 어릴 때 숙제를 안 해오면 엎드려뻗쳐 대신하던 허공 의자 자세를 떠올리면 된다. 이때 무릎이 앞으로 튀어나오면 안 된다. 무릎에 하중이 실리기 때문이다. 잘못된 자세로 지속하면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을 키우기 전에 무릎이 나갈 수도 있다.


앉았다 일어나는 기본 스쿼트 동작은 제법 익숙하다. 으쌰 으쌰! 속도도 올라갔다. 자세도 좋다고 칭찬받았다.


그러나 한껏 으쓱거리던 어깨는 오래가지 못했다. 선생님이 어깨에 올려준 10kg 중량 봉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중량봉을 진 채 12번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뒤 마지막 12번째에는 앉은 채로 10초 버티기를 요구했다.


이미 타오르고 있는 허벅지가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팽팽해진 다리가 부들거렸다. 숨이 목젖을 지나 입술 끝까지 차올랐다. 힘차게 딱딱 끊어 숫자를 내뱉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에게는 늘어진 테이프처럼 들렸다.


“시이이이이이입.....

구우우우우우우우........”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그림 속 흐물흐물 늘어진 시계가 떠올랐다.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인 공간. 나만 지금 그 세계에 갇혀 버린 것은 아닐까? 녹아버린 시계 때문에 초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 그림이 의미하는 심오한 뜻은 몰랐지만 퍼뜩 떠오른 이미지는 내 심정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한계다. 다리를 펴지 않으면 허벅지가 터질 것이다. 이제는 허벅지만이 아니라 온 몸이 뜨거웠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


말도 안 돼! 아직 5초밖에 지나지 않았다.

중량 봉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그 무게는 고스란히 허벅지와 엉덩이를 죽일 듯이 괴롭힌다.


“고개 드세요! 할 수 있어요, 앞으로 4초!”


선생님! 그 말하는 동안 3초는 지났을 거예요!

항변은 말로 나오지 못한다. 숨이 헐떡거려 소리를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른 자세는 이미 먼 나라로 떠났다. 허리는 잔뜩 굽어지고 고개는 땅바닥을 향했다. 자세고 뭐고 버티고 있는 게 용했다. 이제 정말 한계다.


“일!”


뭐 하러 내 돈 주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인생에 대한 고찰에 이를 무렵, 마지막 구호가 귀에 들어왔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와르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선생님은 마지막 ‘일’을 외침과 동시에 중량봉을 들어주었다. 내 뒤에서 언제든 받쳐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상태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온몸이 땀과 열로 뒤범벅이었다. 허벅지는 아직도 사우나 실처럼 후끈거렸다. 아니 화끈거렸다.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세요.”


끄으으으윽. 주인공에게 뚜드려 맞은 괴수의 마지막 신음 같은 괴상한 소리가 목구멍을 비집고 나왔다. 후들후들 터질 것 같이 팽팽한 이 허벅지가 내 것인가 창 밖에 유유히 지나가는 저 행인의 것인가. 정수기를 향해 걸을 때조차 덜덜덜 삐걱삐걱. 탈탈탈 힘겹게 돌아가던 20년 된 우리 집 선풍기가 떠올랐다. 10초의 위력이 내 허벅지 근육을 들쑤셔놓았다.




퇴근 후 침대에 누워있을 때 10초는 정말 별 볼일 없다. 겨울날의 입김은 찰나의 순간 뿌옇게 보이기라도 하지, 10초는 있는지도 모르게 사라진다. 인스타그램을 눌러 엄지손가락으로 한 번 휘익 내리면 없어지는 시간이다.


똑같은 10초다. 그럼에도 헬스장의 10초와 침대 위의 10초가 달랐던 이유는, 그 시간을 얼마나 농도 깊게 사용했느냐의 차이 아닐까. 비록 다음 날까지 고통을 호소한 허벅지에겐 미안했지만.


그렇다면 내 모든 시간의 농도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출근 알람이 울린 후의 5분, 미적거리며 ‘5분만 더’를 외치기보다는 일어나서 팔이라도 쭉쭉 펴보고 책 몇 줄이라도 읽어본다면 시간 속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허벅지가 터질 것 같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도, 헬스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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