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이소 Jan 31. 2021

층간소음으로 위층에서 붙이고 간 쪽지

예상치도 못한 쪽지를 받았다고 하네요.



 띵-동. 거실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 금요일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좀처럼 울릴 일 없는 현관 벨소리에 어기적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반긴 건 사람이 아니라 투명 봉투 안에 곱게 싸인 직사각형 상자였다. 그리고 그 위에 함께 놓인 쪽지. 누가 두고 간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현관에서 바로 열어보았다.



 코로나 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중순. 아이들은 학교에, 다수의 직장인들은 회사에 가지 못하고 집에만 머물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8살 아이가 있는 위층 역시 아이와 내내 집에 있을 터였다.


 부모님은 결혼 후 평생을 아파트에 살며 어느 정도의 소음은 너그러이 받아들이셨다. 아이들의 뛰는 소리든, 옆집에서 공사하는 소리든 함께 사는 공간이니 그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고, 더 조용하길 바란다면 단독주택으로 가야 한다고 여기셨다.


 저녁까지 회사에 있는 나는 알 도리가 없어, 위층이 시끄러웠는지 여쭤보았다. 그동안 한 번도 층간소음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기에 의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대답했다.


 “글쎄... 낮에 가만히 있다 보면 가끔 발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크게 시끄럽지 않아. 한 번도 신경 써본 적 없는데, 뭘 이런 걸 다......”


 하얀 눈 같은 롤 케이크를 포크로 폭 찍었다. 폭신한 쿠션 같은 질감이 기분 좋게 입 안을 채웠다. 동네에는 없는 브랜드의 케이크였다. 퇴근길에 굳이 가게에 들러 아랫집에 줄 케이크를 골랐겠지. 그리고 혹여 기분 상하지 않을까 말을 고르고 골라 조심스레 글을 썼을 터였다. 이토록 이웃을 배려하는 부부이니 평소에 아이에게 뛰지 말라 얼마나 주의를 주었을 것인가.


 조용히 엄마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가서 애 맘껏 뛰어 놀라고 해. 우린 하나도 안 시끄럽고 괜찮다고.”







층간소음은 소음이 아닌 감정의 문제 


 층간소음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가 되었다. 소음 문제로 언성을 높이고 문 앞에 오물을 던지고, 심지어 살인까지 일어났다는 뉴스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 19로 집콕 생활이 늘어나며 소음 민원이 전년에 비해 60%나 늘었다고 한다.


 뛰는 소리가 시끄러워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잠을 못 자 교통사고가 났다는 하소연도 있다. 아무리 조용히 해달라고 애원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래층의 호소 외에 위층이 억울함을 토로하는 경우도 잦다. 소음 방지 매트를 설치하고 조용히 있었음에도 밤낮으로 시끄럽다고 쫓아 올라오는 일이 허다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위층이든 아래층이든 양 쪽 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소통은 막히고 상대방을 비난하고 헐뜯는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그리고 점차 상대방을 ‘나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로 여기고 그 사람이 없어져야만 해방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독일은 일정 수준 이상 소음을 내면 5천 유로(한화 약 7백만 원)의 과태료를 물고, 미국은 강제 퇴거까지 가능하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대책이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전에 서로의 감정을 보듬을 줄 알게 된다면 굳이 법으로 제재하지 않아도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다. 성격도 사는 방식도 제각각인 많은 사람들이 모인 요즘 세상에 꿈같은 이야기이다.






 다음 날 학용품 선물 세트를 사들고 위층으로 향했다. ‘저희는 전혀 시끄럽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아이는 원래 뛰면서 크는 거니까요. 롤 케이크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는 메시지를 담은 쪽지와 함께 문 앞에 살포시 놓고 왔다. 고심해서 고른 카카오 캐릭터가 담긴 학용품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 아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길 바라면서.



 좋은 관계는 배려에서 시작되고 소통에서 완성된다. 먼저 배려하고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좋은 이웃에게서 배웠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따듯한 진심을 전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 오는 날 연하남을 기숙사까지 데려다주었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