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가니 내 자리가 없었다고 하네요.
[거리두기 좌석. 앉지 마세요.]
꿈뻑꿈뻑. 의자에 붙어있는 안내문에 고장이라도 난 듯 두 눈만 껌뻑였다. 다시 한번 좌석 번호를 확인했다.
[3층 B블록 2열 22번]
이상했다. 분명 손에 쥐고 있는 표에도 [3층 B블록 2열 22번]이라고 쓰여 있었다. 예매한 자리를 찾아오니 앉으면 안 된단다. 그럼 도대체 어디에 앉으란 소린가?
예매할 때도 발권할 때도 문제없었다. 심지어 문 앞에서 표를 반으로 가볍게 소독 잘라주던 하우스 어셔(공연장에서 관객을 안내하고 질서 유지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역시 나를 극장 안으로 입장시켜주었는데, 도대체 내 자리는 왜 없단 말인가?
코로나 19로 60일간 중단되었던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재 개막 날이었다. 소위 ‘뮤지컬 덕후’인 친구와 나는 재 개막 소식에 서둘러 예매를 하고 한달음에 역삼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예매한 자리에 ‘앉지 말라’고 쓰여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내 앞자리를 예매한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연 시작 10분 전.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어셔를 불렀다. 다른 층에 비해 객석 수가 적어서 그런지 장내에는 어셔가 한 명뿐이었다. 사정 설명을 듣자 당황스러운 기색과 함께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이내 다시 등장한 그가 말했다.
“전산 오류로 판매되지 말았어야 할 좌석이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여기 빈 좌석에 앉아도 괜찮으실까요?”
안내한 자리는 옆 사이드 블록이었다. 중앙 블록 자리를 선호해서 사이드 블록이 탐탁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긍하고 순순히 앉았다. 그동안 수시로 바뀌는 정부 방역 지침에 따라 예매 가능 좌석 역시 수시로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예매처에서도 헷갈릴 법하지.’ 친구도 무던한 성격이라 별 말없이 안내해준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또다시 문제가 생겼다.
몇 분 후, 그러니까 공연 시작 2분 정도 남았을 때였다. 한 관객이 우리에게 좌석 확인을 요청했다. 표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앉아있는 좌석을 예매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순간 화가 났다. 예매 오류야 그렇다 쳐도 다시 안내할 때에는 빈 좌석인지 쯤은 확인하고 앉혀야 할 것 아닌가. 씩씩거리며 다시 어셔를 부르려는데 친구가 만류했다.
“그럴 수도 있지. 공연 곧 시작하는데 그냥 뒤에 앉자.”
결국 우리는 짐을 들고 2번이나 자리를 옮기며 예매한 좌석보다 4칸 뒷자리에서 공연을 보았다.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중간 쉬는 시간)이 되었다. 시작 전 쌓였던 화는 공연을 보며 어느새 녹아 있었다. 주차 정산을 위해 나가려는데 어셔가 황급히 우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표 두 장을 내밀었다.
“전산오류로 불편을 드리고, 좌석 안내도 잘못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2막은 이 자리에서 편하게 봐주세요.”
깜짝 놀랐다. 1층 VIP석을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좌석 안내가 잘못되었을 때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않고 표출했다면 어땠을까? 극장 측은 소란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 똑같이 1층 좌석을 제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의 큰 소리를 들어야 했을 극장 직원들은 지치고 감정적으로 다쳤을 것이다. 그리고 화를 낸 나 역시 공연 내내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어쩌면 상황을 곱씹으며 더욱 감정이 짙어졌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그럴 수도 있지.” 한 마디에 타인에게 향할 부아를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공연 보는 동안 마음이 누그러졌다. 어쩌면 친구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입 밖으로 내뱉은 화는 감정을 더욱 끓어오르게 한다는 것을. 잠깐 참는다면 안 좋은 감정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타인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방법임을.
그 날 친구가 나에게 알려준 ‘그럴 수 있지’ 마음가짐. 튀어 오르는 감정을 한 템포 쉬게 해 줌으로써 마음을 넉넉하게 만드는 마법과 같은 이 말을, 늘 마음속에 새겨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