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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Feb 15. 2021

아직은 혼자 살고 싶습니다.

결혼 잔소리 폭격을 마주하는 30대 중반의 이야기라네요.




 “결혼은 일찍 해야 좋아. 그래야 나중에 애들 다 크고 놀러 다녀.”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그러니 빨리 결혼 해.”라는 마지막 한 문장은 스스로 유추하라는 듯 팀장님은 말을 끝맺었다. 팀장님에게는 내 또래의 아들이 있었는데 얼마 전 아이가 태어났다. 손자 사진이 가득한 카톡 프로필 사진만 봐도, ‘너희 부모님도 이렇게 좋아하실 테니 얼른 결혼해!’라는 무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런 말에 대한 대답으로 “아직 결혼 생각이 없습니다.”, “혼자 살고 싶어요.”는 0점짜리다. 한두 마디로 끝날 말이 길고 긴 잔소리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중에 후회한다.”, “부모님도 생각해야지.”, “나이 들어 애 낳고 키우려면 고생한다.”, “늙어서 혼자 살면 외롭다.” 등등.


 그래서 터득한 대답이 이것이다. “그러게요. 저도 하고 싶은데 결혼은 혼자 하나요.” 나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고 있어요.라고 어필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결혼을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1차적인 잔소리는 차단할 수 있다. 그리고 말미에 한 마디 더 붙이면 라스트 팡! “팀장님이 소개 좀 해주세요.” 명절 때마다 SNS에서 돌던 ‘잔소리하려면 요금을 내라’는 요금표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면 대부분 “그러게, 누가 있어야 말이지.”하고 대화가 끝난다. (단, 정말 소개가 이루어질 수도 있는 위험도 부담해야 한다.) 서른이 넘어가니 부쩍 늘어난 결혼 잔소리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나름 터득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마지막 연애를 한 것이 3년 전이다. 직원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였다. 장거리 연애라 주말에만 만났다. 반대로 말하면 주말은 고스란히 연애에 할애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세 달쯤 되었을 때, 직장인에게는 너무나 짧은 주말 이틀 동안 연애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기회비용이 아니라 기회 시간이랄까. 매 주말 보던 뮤지컬, 느지막이 일어나 포근한 침대에서 책을 읽는 시간, 친구들과 목이 아플 정도로 수다를 떨며 먹는 케이크.


 연애에 할애하는 시간은 ‘스케줄’이 되었다. 마치 계획표를 짜듯 의무적으로 끼워 넣기 시작했다. 어릴 때 했던 연애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좀 더 설레고, 매일 보고 싶고 그 어떤 것보다 우선순위였던 것 같은데. 이런 게 연애였던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쯤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연애보다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은 것이다.








 또래 직장 동기들은 모두 다 결혼을 했다. 모두 나 빼고 약속이라도 한 듯 줄지어 웨딩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피드는 어린이집이 된 지 한참이다. 누워서 까르르 웃는 것만으로도 셔터를 누르게 하는 아기부터 짧은 다리로 뒤뚱뛰뚱 뛰어다니며 엄마! 를 외치는 아이들까지. 랜선 이모는 오늘도 텅 빈 하트를 꾹 눌러 빨갛게 채워준다.


 보고 있으면 가끔 내가 유별난 건가 싶어 질 때도 있다. 하지만 1코노미(1인+이코노미), 혼놀족, 싱글 웨딩 등 혼자 사는 젊은 세대를 나타내는 말들은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1인 가구의 왕성한 소비 지출로 기업들의 영업 방식이 바뀔 정도라 하니 나만 유별난 건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 특히 내 또래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연애나 결혼보다 자유로운 생활이 즐겁고, 가정을 꾸려 경제적인 부담을 껴안기보다는 혼자 벌어 혼자 먹고사는 지금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는 혼자 살고 싶지만 비혼족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은’ 혼자 살고 싶은 것이다. TV를 잘 보지 않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할 때에는 리모컨을 쥐고 있을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한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가 있다면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다.


 결국 그런 상대가 없다면 굳이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30대가 되면 반드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시계에 맞춰 의무적으로 삶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너만 생각하니, 손자 보고 싶은 부모님도 생각해야지.” 내 의견을 설파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이 말에는 입을 다물곤 한다. 나의 결혼과 부모님의 체면의 인과관계를 떠나서, 모임을 다녀온 엄마가 손자 자랑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허허 웃고만 왔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이를 안겨주자고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살 맞대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결혼을 닦달하지 않는다. 내심 조급하시긴 하겠지만 아직은 결혼할 마음도 상대도 없다는데 어찌하겠는가. 나는 혼자 사는 삶이 즐겁다.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능청스럽게 넘기는 스킬만 날로 늘어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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