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원 다녀오고 여니는 실내복을 갈아입고 자기방 침대에 매트를 켜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다른때보다 조용하고 인기척이 없어 문을 열어보니 책상에 앉아 탭을 켜고 큐브를 만지작 하고 있었다.
“여니 뭐하니? 아무소리가 안나서말야.”
“응, 엄마. 큐브를 맞추려고 영상 보고 있어. 근데 잘 모르겠어.”
보고있는 영상이 여니가 보기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적당한 영상을 찾아주고 나왔다.
아이가 시간 반 동안 인기척이 없어 뒹굴하며 밍꼬발랄 영상이나 보겠거니 했더니 큐브랑 씨름하고 있었던것이다. 그게 왜 반갑고 안도감이 들던지.
학년이 시작되고 여니는 달라진 모습이 종종 보였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려하는걸 보니 사춘기가 시작되었나 싶다가도 어디 아픈 걸 알아채지 못할까 싶어 유심히 살피게 된다.
작년같으면 친구랑 같이 하교 후 헤어지고 나면 전화를 걸어 "엄마 통화해" 라며 했었는데 요즘은 전화가 짧다. 영어학원 갔다와도 손 씻으러 욕실로 향하면서도 입을 가만두지 않는 아이였는데 말이다. 코로나여파가 커서 2월부터 좋아했던 줄넘기 학원을 쉬게 해서 그런가 활력이 많이 떨어져보였다.
그랬었는데 아이가 끙끙대며 큐브를 해결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저녁을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여니는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지친 모습으로 거실로 나왔다.
“ 엄마 안되겠어. 어느 한부분에서 진행이 안되. 큐브가 이상한가바.”
나는 영상을 오래 보는것이 눈도 피로하고 어깨도 아플터이니 그만하라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나는 주변을 걸으러 나갔다.
무인문방구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들어가보니 허락되는 가격의 큐브가 있었다. 여니가 생각나 계산했다. 집에와 여니에게 주었더니 너무 좋아했다. 그러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가 해본다.
사실 지금 이 시간에는 여니가 수학문제집을 해야하는데... 오늘은, 하루 날렸다.
활력이 없어보였던 여니가 기쁘게 큐브를 들고 가는 걸 보니 웃음이 지어졌다. 그러고 있기를 30분이 흐르고 여니는 큰소리로
“ 엄마! 했어! 했어!” 하며 기뻐한다.
아이의 활기있는 미소를 오랜만에 보아서 나도 덩달아 좋았다.
무언가 집중하고 애를 쓰는 모습은 이쁘다. 사랑스럽다.
요즘 여니를 걱정하면서도 여니에게 아픈 말을 자주했다.
코로나시기에 나는 살집을 얻었고 여니는 학습의 부족함을 얻었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코로나로 인한 학습 결손의 이야기가 우리집 여니에게도 해당된다. 고등학생이 된 유니에게 지출이 많아져 여니에게는 수학학원 너무 이르다라고 단정짓고 집에서 봐줘야지 했었다. 그러다보니 애와 싸우기 싫어 불규칙적으로 봐주었던 나의 행동도 한 몫 했다. 그런데 이제 5학년이되었다고 조급해진 나는 아이를 채근했고, 나의 답답함의 표현으로 듣기 싫은 소리를 자주했다. 여니의 활력없는 모습이 내 책임도 있는것 같아 계속 찝찝하고 불편했다. 그런데 아이가 완수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반성이 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기때 여니는 호기심이 많아 이곳저곳 탐색하다 양쪽 눈썹위가 찢어져 매우 놀라게 했고, 3살때 유니가 학교가는것을 배웅하려 잠깐 나왔는데 집에 있던 여니가 문을 잠가버렸다. 한시간 넘게 혼자있는 여니를 걱정하며 밖에서 열쇠아저씨를 기다려 현관문을 강제로 열었고, 5살때는 유치원다녀와 언니방으로 쏙 들어가더니 문을 잠그고 가위로 자기 앞머리를 쥐파먹은듯이 잘라서 수습하는데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7살때는 쇼파에서 잠들어 있는 아빠의 얼굴에 해가 비치니 작은 손으로 해를 가려주었고, 엄마가 갑자기 앗!하고 소리를 내면 뛰어나와 "엄마 괜찮아?" 라고 먼저 물어봐주었던 아이였다. 유니가 학교에서 화가났던 이야기를 하면 "어머 그랬구나..화 많이 났겠다." 라고 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를 건네주던 아이였는데. 그랬었던 여니의 모습을 잠시 잊고 있었다.
오늘은 어릴적 여니를 기억해보며 여니의 반짝이던 눈, 마음이 담긴 손짓, 감동을 주던 말을 기억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