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의 꽃 Apr 17. 2024

어느 노부부의 굴곡진 삶


 요양보호사 실습 때의 일이었다. 교육 중에 이론과 실기가 끝나면 마지막에   재가방문서비스 교육이 있어서 요양보호대상자 가정으로 직접 가서 실습하는 시간이 있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에다 활동할 수 없는, 몸이 불편한 분들이 대상자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속에서 열이 올라오는 삼복더위 속 어느 날이었다. 요양보호사 J를 따라서 심곡동 길가에 있는 낡고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후끈한 열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시큼 매게 한 음식물 냄새까지 코를 자극했다. 80이 넘는 노부부가 사는 집이었는데 현관문을 열자 작은 키에 깡마른 할아버지는 몹시 날카로운 눈매만 봐도 꼬장꼬장 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서비스방문시간이 1분만 늦어도 바로 불호령이 떨어지는 괴팍스러운 성격이라고 J가 귀띔해 줬다. “왜 혼자 안 오고 사람을 데리고 와요” 큰 소리로  역정을 내더니 안방으로 들어가서 아예 거실에 나오질 않는다. 실습생이 동행할 거라고 미리 얘기를 안 한 모양이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나는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는 요양보호사 실습생입니다. 어르신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노인은 듣는 척도 않는다. 부엌에는 며칠 된 듯한 음식물이 말라비틀어진 상태로 상위에 널브러져 있고 싱크대 안에는 수북이 쌓인 그릇들이 키 재기를 하며 모습을 내밀고 있었다. 부엌바닥에는 대낮인데도 바퀴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열악한 주거환경에 관리가 안 된 상태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재가방문서비스요양보호사가 집을 정리해 주고 가고 가면 겨우 밥 해 먹고 설거지는 모아놓고, 그다음에 요양보호사가 방문할 때까지 그런 식으로 반복된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성격이 독특한 노인이 더욱 퉁명스럽게 우리를 맞이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에 새로운 요양보호사가 집에 들어오면서 코를 손으로 막고 집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면전에서 불평을 했단다. 첫 만남부터 불쾌했지만 할아버지가 그에게 청소며 집안일을 부탁하자 자신은 파출부가 아니며 되레 집안 좀 깨끗하게 치우고 살라고 훈계하더란다. 그러면 뭐 하러 내 집을 찾아왔냐고 하자 그가 하는 말이 자신은 어르신들 말벗해 드리고 불편한데 없나 관찰하러 온 요양보호사라고 말했단다. 그 말을 듣자 할아버지는 당신 같은 사람 필요 없으니 나가라며 소리소리 질러서 내 보냈다며 이북 사투리에 금속성 소리 나는 카랑카랑한 특유의 목소리로 일러바치듯이 전해준 사연이다.

그 요양보호사가 직업의 특성을 너무 교과서 적으로 해석한 것 같았다. 대상자들은 대부분 질병이 있고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청소며 설거지 등을 제때 못 하고 사는 집들이 있다. 대상자가 못한 일을 해주다 보면 어디까지가 요양보호사의 몫인지 모호한 경우가 있다. 반찬 만드는 것에서부터 세탁, 시장보기, 병원 모시고 가는 일등이 있지만 확실한 구분이 안 가는 일도 상황에 따라서는 해준다고 한다.


 집안은 끝없이 어질러져 있는 데다 할아버지는 활동하는데 별 무리가 없어 보인지라 기본적인 청소 정도는 할아버지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기의 생각을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전임요양보호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안방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아무리 힘이 없고 몸이 불편해도 지저분하게 사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 주는 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리라.

한여름인데도 거실에 요를 깔아놓고 겨울 솜이불을 고 누워있는 할머니는 거동을 못하는지 몸이 몹시 불편해 보였다. 깔고 있는 요는 호청을 다 뜯어서 맨 솜이 드러나고 그 위에 겨울 모포를 깔아놓고, 겨울 이불도 호청을 벗기고 면속싸개만 이불솜을 감싸고 있었다. 왜 이불홑청을 벗겨놨냐고 했더니 이불홑청이 피부에 와닿는 부분이 차가워서 벗겨 놨다고 했다. 이불솜 위에는 온갖 실오라기들이 붙어서 지남철에 붙은 쇳가루처럼 지저분해 보였다.

 

 J는 안방에 들어가 비지땀을 흘리면서 침대 주변을 말끔하게 치우고 있었다. 따라 들어가서 거들어 봐야 할아버지 화만 증폭 시킬 것 같아 할머니 주변만 깨끗이 정리했다. 이불솜에 붙어있는 실오라기는 테이프를 이용해서 제거하고, 주변이 말끔하게 치워지자 노인도 어느 정도 화가 풀린듯했다. 일이 끝나고 그 집에서 나올 때

“모레 또 오려고 하는데 어르신께서 싫다고 하시면 안 오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마음대로 하라우

 짧은 대답으로 겨우 승낙을 받아냈다.

이틀 후에 다시 할아버지 댁에 갔더니  노인은 보건소에 할머니 약 타러 가고 할머니 혼자서 더운 여름 날씨인데도 추운지 몸을 움츠리고 겨울 이불을 덮고 누워 계셨다. 할머니는 자리에 앉더니 겹겹이 쌓인 한을 쏟아 놓았다. 당신의 영감인 노인은 자식에게 빚만 남겨줘서 며느리가 학교 급식소에 나가 일해서 겨우겨우 먹고 살아가는 형편이란다. 며느리 불쌍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단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대상자가 없다가 우리를 보더니 응어리진 속내를 털어놨다.     

사연은 이랬다. 노인이 젊어서 사업할 때 사업자 등록을 아들 앞으로 내었다.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아들이 채무를 몽땅 떠안고 아들은 신용불량자가 돼서 직업도 없이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그가 사업할 때 회사에 사람이 제대로 붙어있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단정 짓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인 성격 같았다. 아무리 실력 있고 유능한 사람이 들어와도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소리소리 질러서 내쫓아 버리고, 운전기사도 한 달을 못 버티고 나가고, 납품할 물건도 수요에 맞춰 공급해야 되는데 공장에 일할 사람이 없어서 거래처에 물건을 못 대주니  결국은 사업장이 부도가 난 것이다.


 한때는 며느리와 한집에서 살았는데 며느리가 조금씩 번 돈으로 손자들 주려고 과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영감이 훔쳐다가 몽땅 먹어버린 바람에 며느리 볼 낯이 없고 너무 속상해서 며느리 마음 편하게 사라고 노부부가 따로 나와서 살게 됐다고 했다. 이틀 전에 잠깐 볼 때도 얘기 도중 할머니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조용히 하라우” 하면 할머니는 중간에 말을 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할머니의 살아온 삶이 대강 짐작됐다. 할아버지 앞에서 제대로 큰소리 한번 못 내고 쥐 죽은 듯 살았을 할머니의  계속된 신세한탄이 쏟아졌다

요즘사람들이야 도저히 못살겠다 싶으면 이혼이라도 하지만 이혼은 생각지도 못했고 가슴만 치며 살았단다. 남편이 보건소에

 약 타러 갔다 오면서 자기 먹을 과자만 잔뜩 사 오지 아내 먹을 사탕 하나 사 오지 않은 자기밖에 모르는 냉정한 사람이란다. 할머니는 자기의 생각이나 의견을 할아버지께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말해봐야 의견이 반영될 리 없고 분란만 생길게 뻔한 결과라는 것이다. 할머니의 깊게 파인 주름 속에는 고통스러운 세월의 흔적이 숨어 있었다. 할머니의 과거얘기가 거의 끝나가자 중절모를 눌러쓴 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셨다.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있고 더운 날씨 때문인지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틀 전의 서슬 퍼랬던 모습은 어디 가고 초라한 모습으로 약봉지만 할머니께 건네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틀 전에 내 면전에서 짜증 냈던 게 겸연쩍은 모양이다. 일이 끝나고 그 집을 나오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이 노인 부부는 수직 관계로 할머니는 남편에게 종속된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니 가부장적인 노인의 생활관 때문에 아내는 희생해 왔던 셈이다. 암담한 현실의 벽에 갇혀버린 할머니의 남은 삶도 자기 인생이 아닌 남편에 의해 수동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치유되지 않은 많은 상처를 안고 운명의 사슬에 묶여버린 녹록지 않은 할머니의 이런 삶이 안타까웠다.   

 ‘

작가의 이전글 불편한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