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거리가 온통 뿌옇다. 눈앞에서 조금 떨어진 곳도 안갯속에 가려진 것처럼 불투명하다. 베일에 가려져 앞날을 예측 못한 우리의 삶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명확치 않은 것 같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던 H의 건조한 얼굴이 영상처럼 스쳐지나간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남자요양보호사 W가 말했다. 빈 침대는 시간이 흘러도 주인이 돌아오지 않고 가지런히 개어진 이불이 주인의 부재를 알린다. 일 년 넘게 H와 유일하게 소통했던 W는 그가 기댔던 사람 중 한사람이다. 며칠 전, 수심 가득한 얼굴의 그의 부인이 점심시간 식당에 나타났다. 같이 식사 하자고 했더니 바빠서 그냥 가겠다며 물만 한 컵 마시고 일어섰다. 병원에 입원한 남편의 필요한 물품을 가지러 왔다고 했다. 입원해도 이삼일 넘기지 않고 귀원하던 H는 일주일을 넘겼다. 남편 좀 어떠냐는 물음에 그냥 그렇다는 사무적인말만 하고 종종 걸음으로 나갔다. 세상살이에 지친 그녀의 풀죽은 뒷모습이 외줄타기 하는 곡예사 마냥 위태위태해 보였다.
H는 나이60이 채 되지 않은 젊은 환자다. 뇌졸중으로 쓰러진지 20여년이 다 되어간다는 그는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눈에 보이는 공간이 세상의 전부다. 기관지 절개한 목에 삽관을 하고 코에 연결한 비위관을 통해 영양을 섭취한다. 움직이지 못한 몸의 근육은 말라있다. 다리는 막대처럼 가늘고 삽관한 목에서 가래가 흘러나올 때는 벨을 눌러서 요양보호사를 호출 한다. 유일하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손으로 벨을 눌러서 불편한 부분을 부탁했다.
바쁜 케어시간에 그에게 경관식을 하려고 침대를 일으켜 세웠다. 비위관에 물을 주입하자 불편한 모습으로 경관식 주입을 거부했다. 무슨 말인지 웅웅 거리는 말이 기관지 절개 삽관을 통해 흘러나왔다. “식사 드릴 거니까 잠시 기다리세요.” 담당 요양보호사를 찾아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갑자기 그의 눈은 흰자위가 커지더니 코에 연결된 비위관을 잡아 빼려고 비위관 줄이 그의 손에 쥐어져있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를 외치며 급하게 그의 손을 잡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유난히 낯가림이 심한 그는 자기 담당자가 아니면 누구도 거부하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상에 누워있는 세월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삼십대에 쓰러져 이십 여 년 간 누워있으려니 이골이 날만했다. 편협한 생각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젊은 청춘이 병원과 요양원 침대에서 사라진 그의 삶이 가혹했다. 그 후로 그의 케어는 W가 맡아서 했다. 불편하지 않게 정성을 다해 그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세상과 단절된 그에게 세상소식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새로 입사한 요양보호사 G가 멋모르고 비위관 경관식 투여를 했다. H는 낯선 사람이 케어 하는 것에 화가 나자 순식간에 자기 코에 연결된 비위관을 잡아채서 뽑아버렸다. 침대에 흥건하게 유동식이 쏟아져 흘러내리고 G의 얼굴과 옷에도 유동식이 허옇게 튀었다. 다시 삽입하려면 병원에 가서 삽입하고 와야 되는데 집에서 부인이 와야 병원에 간다. 부인이 오지 않으면 안 가겠다고 버틴다. 병원 엠브란스를 이용해서 부인을 대동하고 다녀오곤 했다. 생계를 책임진 부인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남편병원 외래를 거르지 않고 동행했다. 그에게 바쁜 부인의 입장은 별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옆에 부인이 있어야만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가끔 일부러 뜻하지 않은 사고를 치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협력병원 의사가 회진을 나와서 대상자들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진료 오면 비위관 환자나 도뇨관 환자들은 삽입한 튜브를 교체한다. 언젠가 협력병원 의사가 와서 비위관 교체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H는 비위관을 빼 버렸다. W가 왜 비위관 빼버렸냐고 묻자 비위관을 빼야 부인이 올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맞벌이를 해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 혼자서 일터로 남편 면회하러 다니는 그녀의 모습이 바람에 휘청거리는 쓰러져가는 나무 같았다.
차라리 정신이 흐릿한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확실하게 판단하지 못 하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거나 고통스럽게 느끼지 못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본인은 판단력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한 환자본인만큼은 크게 고통스럽지 않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던 그가 갑자기 열이 올랐다.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한지 십여 일 만에 질긴 생명의 끈을 놓았다며 부음소식을 전해왔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는 세상의 미련을 버리고 열린 천국 문을 향했다. 왠지 마음이 개운치 않다. 무조건 낯선 사람을 거부한 환자인 그에게 좀 더 너그럽게 다가갔다면 그의 부음 소식을 듣고도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떠나지 않는다. 미세먼지로 희뿌연 날씨만큼이나 불편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