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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Mar 30. 2024

옛집


 토요일 이른 아침, 차는 도로 위를 달린다.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시간에 출근 시간처럼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오랜만에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한강 변을 끼고 빌딩 숲을 이루는 여의도 고층건물은 희붐한 새벽 미명에  우뚝 선 건물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금융 중심지인 한국증권거래소와 KBS 방송국과 높은 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간밤에 내린 눈이 길목마다 엷은 층을 이루고 있다. 건너편 빌딩숲을 바라보며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달린다. 구 시장 낡은 건물은 언제 철거했는지 평지로 변해있다. 평평하게 고른 평지에는 건설장비가 서 있는 걸로 보아 새로 건축을 시작한 모양이다. 옆에 신축한 수산시장건물로 점포 이전을 거부한 상인들은 전기와 수도가 끊긴 점포에서 삶의 터전인 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며 전쟁을 치르듯 영업을 계속해 왔었다. 지난 여름날엔 시장 앞 길가에 나와서 생선 위에 얼음을 얹어놓고 영업하는 모습을 보았다. 밥그릇을 두고 치열한 싸움은 그칠 줄 몰랐다. 몇 년 동안 구 시장 상인들과 수협 측은 고소고발을 하며 양보 없는 싸움을 지칠 줄 모르고 해 왔었다. 이제는 구 시장이 사라지고 그 주변 길도 없어졌다. 구 시장 상인들과 수협 측의 전쟁이 끝난 모양이다.


 수산시장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장화를 신고 방수 앞치마를 두른 채 생선 상자를 나르는 사람, 커다란 방어를 도마 위에 얹어놓고 회를 뜨는 사람,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은 자본주의사회의 삶의 경쟁이 치열하다. 코로나바이러스 위험에도 마스크로 무장하고 생선 상자에 있는 생선을 들어 보이며 가격을 제시한다. 이미 죽어있는 낙지를 손가락으로 툭 치며 살아서 꿈틀거리는 산 낙지라고 너스레 떠는 상인의 입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떨이로 담아달란다. 사람 시선을 끄는 것은 말주변이 한몫을 한 것 같다. 시장 안 종업원 중에는 예전엔 동남아 출신 남자들이 가끔 보였는데 이제는 아프리카계열 남자들이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생선을 팔고 있다. 더운 나라에서 살다가 가족들을 위해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일하는 모습은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표상이다. 칠팔십 년대 열사의 나라 중동에 건설노동자로 파견 나가서 오일달러를 벌어오던 우리나라 건설노동자의 모습 같다. 시끄럽고 어수선해야 영업이 되고 돈이 도는 시장의 생리상 꼭 불경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갈치가격을 묻는다. 은빛이 반짝이는 싱싱한 갈치는 한 마리에 만원이 넘는다. 가격이 맞지 않아서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삼치를 한 상자 사서 들고나간다. 자녀들과 나눠 먹으려고 한 상자 산다고 한다. 질척거리는 시장바닥을 한 바퀴 돌아봐도 특별히 눈길 가는 사고 싶은 것은 없다. 동네 시장에서도 살 수 있는 것들이지만 바깥바람도 쐬고 사람 살아가는 생생한 현장 모습도 보고 싶어서 남편과 함께 나왔다. 생굴 한 상자와 삼치를 사서 차에 싣고 차에 올랐다.


 결혼해서 노량진 수산시장 가까운 곳에서 살았었다. 옛 기억이 떠오른다. 남편이 옛날 살았던 집 주변으로 차를 돌렸다.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벌써 사십여 년 전 일이라 주변을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다며 주변을 살폈다. 장승백이에 있던 국민은행은 지금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천천히 서행하며 주변을 돌았다. 옛날 건물은 가뭇없이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다세대주택으로 바뀌어서 살았던 옛집은 찾을 수 없었다. 주변이 정비되지 않고 낡은 주택은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단독주택 차고를 개조해서 방으로 만든 집에서 일 년을 살았다. 그 집에 살 때 큰아이를 출산했다. 유난히 춥던 그해 겨울은 허술하게 지은 방은 보온설비가 되지 않아서 바깥 벽면이 얼음이 꽁꽁 얼어서 에스키모의 얼음집을 연상케 했다. 봄이 되자 얼음벽이 녹아 흘러서 벽지가 들뜨고 곰팡이가 슬었다. 가장 추웠던 겨울을 그 집에서 보냈다. 큰 애가 태어난 큰애고향 집을 찾아보고 싶었다. 같이 시장 가고 점심때는 모여서 상추쌈 먹던 집주인과 건넌방 아주머니는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없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도서 1장 4절) 그 자리에 있던 집은 못 찾았지만, 그곳은 그대로 있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른다. 무덤처럼 쌓인 시간 위에 영원한 것은 없다. 땅 위에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 옛것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전쟁을 치르듯 치열하게 살아온 과거를 내려놓고 언젠가는 자기 본향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미 인생의 석양을 향하는 마음이다. 시장바닥에서 부대끼며 소리 지르고 사는 바쁜 삶일지라도 그들도 언젠가는 자기 할 일 끝나면 옛집을 찾을 것이다. 삶은 소리 없는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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