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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Mar 27. 2024

그 여자의 삶 3


  3층에 사는 아줌마는 낮에 외출했는지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늘씬한 키에 교양 있는 미인이다. 언제나  분위기 있고 절제있는 태도에 작은 말소리는 누가 봐도 요조숙녀였다. 남편과 아들, 고등학교 다니는 막내딸이 있었고 아줌마는 전업주부로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더운 여름 날씨라 3층에까지 걸어 올라가기에는 지친 듯이 보였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여자의 찢어지는 듯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걸음 소리가 건물을 쿵쿵 울렸다. 웬일인가 싶어서 계단 쪽으로 나가봤더니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윗옷은 반쯤 찢긴 채 맨발로 뛰어오는 여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웬 여자가 이러고 있나 살폈더니 3층 아줌마였다. 항상 깔끔한 차림으로 봤던 모습이라 나도 굉장히 놀랐다. 아까 났던 비명은 그녀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를 우리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남편이 목을 조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며 주변 사람들 부끄러워서 어떡하냐며 걱정했다. 폭행을 당할 만큼 잘못을 저질을 성격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부끄러운 게 문제가 아니라 아저씨가 왜 아줌마를 때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더니 낮에 있던 일을 얘기했다.


  아저씨는 건축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일이 없을 때는 수입이 없어서 생활이 어려웠다고 했다. 아직은 건강하고 젊기때문에 힘들게 사는 것보다는 아줌마가 경제 활동해서 가계에 보탬이 되면 낫지 않으냐고 했더니 물론 그렇게 하면 좋지만 남편의 반대가 심해서 생활이 어려워도 일하러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더니

  “사실 그 사람 의처증 환자예요. 내가 남부끄러워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내가 밖에 나가서 일하면 남자들 하고도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라 일 나가는 것 자체를 봉쇄해 버리니 답답할 수밖에 없어요”

  그날도 밖에 나갔다 온 일 때문에 싸움이 났다고 했다. 아들이 아르바이트로 건축 노동현장에서 일했는데 임금을 못 받고 있어서 힘들게 일한 임금을 포기하기 아까워서 현장 사무소에 임금 받으러 갔다 온 것을 알고 난리가 났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예쁘게 화장하고 나갔냐며 다그치다가 집기를 던지고 나서도 분이 안 풀리는지 아무 대꾸도 못하고 있는 아줌마에게 달려들어 목을 쥐고 흔들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줌마에게 우선 입으라고 티셔츠와 슬리퍼를 주면서 밤에 어디 갈 수 없으니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더니 성의는 고맙지만 만약에 여기 와서 행패라도 부릴까 봐 서울 친정 오빠 집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친정 오빠한테 전화하고서 오빠 기다린다고 밖에 나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에 오빠가 와서 어떤 일이냐고 묻고 동생의 성격을 잘 아는데 무슨 일로 폭행까지 했냐며 따졌다. 오빠입장에서는 잘못했다는 사과받고 다시 이런 일 발생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고 가려했는데, 처남에게 여동생 데리고 가라며 큰소리 친 것을 보고 화가 나자 동생을 데리고 가버렸다. 처남 앞에서도 저러니 안 봐도 어떨지 그림이 그려졌다. 며칠 지나자 아줌마한테 전화가 왔다. 밤에 갈데없어서 어쩌나 했는데 편의를 봐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아줌마한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인데 시일이 너무 지나면 문제가 커질 수 있고, 애들이 고생하니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더니 자기 입장에서는 남편의 폭행문제도 그렇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데리러 오면 되련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얘기했다. 어차피 남의 가정사에 내가 나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아저씨가 데리러 가면 그때 못 이기는 척 따라 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저씨는 아줌마 없이도 얼굴에 구김살 없이 날마다 일하러 갔다가 들어오는 모습이, 부인이 집에 있을 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밤에 집으로 들어가는 아저씨를 계단에서 봤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딸 도시락 반찬 해주려고 샀다며 손에 햄과 소시지를 들고서 올라 간지 얼마 안돼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딸의 비명 섞인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3층에서 뭔가 둔탁한 소리를 내고 1층 길바닥에 툭 떨어졌다. 서랍장 한 칸이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주변에는 옷가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계단으로 아들이 여동생의 손을 잡고 나오면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얼굴이 일그러진 채 동생을 데리고 밤에 외삼촌댁 어머니한테 간다고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태에 소름이 끼쳤다. 아이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우리 가게에 만약 아이들이 지나가다가 떨어지는 서랍장에 맞았다면 생각하니 끔직한 생각이 들었다.

 전날 일은 다 잊은 듯 아저씨는 저녁에 같이 일하는 동료와 수퍼마켓 앞에서 소주를 마시는 아저씨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료는 아저씨한테 집안 얘기를 들은 듯

 “집에서 둘이는 나가고 둘이 남아있어?”

 “아냐 셋이 나가고 나 혼자 있어”

두 사람 얘기 하는 걸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두 사람 목소리가 너무 커서 7,8m 쯤 떨어진 곳까지 들리는 목소리는 전혀 걱정된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식구들 다 쫓아내고 혼자 남아 있어도 부끄럽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한참 지난 다음에 아줌마와 자녀들도 집으로 들어 왔다. 아저씨는 집에서 제왕처럼 군림했고,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는 아줌마에게 폭력까지 휘두르는 안 좋은 습성이 있어서 아줌마의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한번은 아저씨 생일상에 떡이 안 올랐다고 가재도구를 부수고 아줌마를 폭행한 일까지 있었다고 했다. 같은 건물에 살면서도 아저씨의 이중적인 성격을 전혀 몰랐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줌마의 안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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