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를 달리던 차가 그녀의 집 앞에 섰다. 정원에 서 있는 나무들도 목마른 듯 햇볕아래 이파리를 늘어뜨리고 서 있다.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주기 위해서 불볕더위를 이기며 묵묵히 서있는 나무는 목마른 영혼의 주인 입장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집 마당의 푸른 잔디도, 정원의 크고 작은 나무도 그대로다. 나무 위에서 푸득 거리며 평화롭게 날아다니는 새들도,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도 그대로다. 달라진 게 있다면 모자를 쓰고 검은 장화를 신고 집 앞 텃밭에서 일하던 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볼 수 없다. 정원 벤치에 앉아있던 그녀는 우리 가족 일행을 보고 걸어왔다. 수척해진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남편을 떠나보낸 그날의 사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3월 하순, 남편은 태안에 내려간다며 양복 손질을 해놓으라고 전화를 했다. 제종 시누이 남편이 갑자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며 퇴근하고 곧바로 밤에 내려간다고 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남편은 가슴 아파했다. 비록 친동생은 아니지만 집안 동생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잘 이기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에 대견스러워했었다. 우리 집안에서 제일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가장 행복한 부부라고 말했다.
부부의 운명은 어쩌면 불행의 서곡을 알리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남편이 운전하는 경운기를 타고 들로 가던 그녀는 트럭과 경운기가 추돌하는 바람에 팔에 부상을 입었다. 병원에 입원해서 어느 정도 치료가 되자 퇴원해서 통원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손수 밥을 하고 찌개를 끓여서 밥상을 차려오면서 한 번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날도 그녀는 아침 일찍 병원에 갔다 오면서 버스에서 막 내려서 집으로 들어온 순간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마당에서 텃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남편이 경운기에 앉아있고 경운기는 그 자리에서 모터만 시끄럽게 돌아가고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해서 “00 아빠, 거기서 뭐 해?” 소리치는데도 아무런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달려가서 남편을 흔들어 보았다. 얼굴에 청색증이 와있는 손을 쓸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119로 전화해서 병원응급실로 향했지만 이미 심정지가 된 상태라 곧바로 영안실로 보내졌다.
그날도 밭에 비료를 뿌리기 위해서 경운기를 몰고 밭으로 들어가다가 비닐하우스를 받치는 지지대 쇠골조가 경운기에 부딪치면서 그의 목으로 둔탁한 쇠막대가 튀면서 쇠막대를 목에 맞고 일어난 사고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참극이었다. 곁에 아내가 있었다면 그런 비참한 최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며 아내는 괴로워했다.
제종시누이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빨리 세상을 뜨는 바람에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녀는 유아기 때부터 거친 세파에 노출되었다. 마루 위를 기어가다가 마루 아래로 굴렀다. 그때 척추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 척추장애를 입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사고로 입은 장애, 어린아이에게 운명은 가혹했다. 철이 들면서부터는 광야의 들풀처럼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며 살았다. 생활에 불편은 있어도 그럭저럭 직장생활도 하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며 살았다. 혼기가 찼지만 사회통념상 장애인으로 결혼하기가 수월 치는 않았다. 지인의 소개로 농촌에서 농사짓는 성실한 총각이 있으니 선을 보라고 했지만 어차피 뻔한 결과로 상처받기 싫다며 거절했지만 이미 상대 총각도 아가씨가 장애가 있다는 걸 다 알기 때문에 부담 없이 보라는 지인의 말만 믿고 선을 보고 곧바로 결혼으로 이어졌다.
농사를 지으며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살고 있던 집을 헐고 새로 집을 지어서 살림집을 빼고는 펜션으로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집 주변에 나무를 심고 주변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고 꽃을 심어서 봄에는 동화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들 정도였다. 남편은 아내를 왕비처럼 대해주고 자녀들도 장애 있는 어머니를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생각하는,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누렸다. 여자의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딸로 남편의 아내로 아들의 어머니로 종속된 삶을 살아가면서 불평등한 사회제도와 관습을 원망하고 살아온 주변의 친척들은 어쩌면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누린다며 부러워했었다.
정원 앞 정자를 덮고 있는 벚나무는 봄에 얼마나 화려한 꽃을 피웠을까. 철 따라 꽃이 피고 나무는 과일 열매를 선물했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도 사물에 대한 느낌을 모르고 계절을 보낸 그녀는 밤에 침대 위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는 날을 헤아릴 수 없었다. 30여 년의 결혼 생활 중 한 번도 아내를 향해 듣기 거북한 말을 하지 않은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밭에는 고추가 햇볕에 붉게 익어가고 있다. 고추를 따 주려고 밭으로 가려하자 그만두고 정원에 나뭇가지 좀 쳐 달라고 한다. 주인 잃은 나무들은 제멋대로 가지를 뻗어내고 있었다. 날마다 예쁘게 가꾸고 풀을 매 주던 주인의 부재로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네 같다. 정원용 가위를 가지고 옆으로 뻗어나간 곁가지를 쳐내고 정원에 있는 꽃나무를 손질해 주었다. 봄에는 동화 속 궁궐처럼 화려한 꽃들이 집을 둘러싸고 있고 각종 나무에는 아름다운 꽃향기를 쏟아내는 풍경이 있는 아름다운 작은 궁궐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나무사이를 끼어 다닌다. 나무 위에는 까치가 날아다니며 주인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준 것 같다. 남편이 모든 것을 다 해주었기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더 힘들다는 그녀는 남편과 사는 동안 왕비 대접받고 살았다며 남편의 사랑을 받기만 했지 사랑하는데 인색했음을 후회했다.
곤고했던 지난날의 힘든 삶도 신뢰와 사랑이 있었기에 둘이서 극복해 나갔다. 남편은 남의 품 일을 하면서도 힘든 내색 없이 세상 모든 행복은 자기 것으로 알고 살아왔다며 흐느낀다. 그녀의 행복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 아직도 남편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홀로 가슴앓이를 하는 그녀는 얼마만큼의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홀로서기를 할는지 심리적으로 무장해제 된 그녀의 영혼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진 것 같았다. 바람처럼 가버린 남편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그녀가 부르는 사부곡을 바람에 실려 남편에게 보내는 걸까. 잔혹한 여름의 더위도 그녀의 시린 마음을 녹여 주지는 못 한 것 같았다. 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구름 속에 숨어있던 태양이 고개를 내밀어 그녀의 얼굴 위를 비추고 있다.